[클릭이사람] (91) 조리명장 국내1호 한춘섭

[클릭이사람] (91) 조리명장 국내1호 한춘섭
 
강산이 세번 바뀌는 30년이란 긴 세월을 오직 조리에만 파묻혀 살아온 사람이 있다. 바로 호텔캐피탈 조리부장 한춘섭(48). 조리직종에서 국내 처음으로 명장이 된 주인공이다. 조리명장 국내1호 답게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지금까지 요리밖에 모르고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했지만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외길인생을 걷다보니 이런 영광도 있군요. 노벨상을 받은 기분입니다"

한씨는 70년 경양식점 종업원으로 조리인생을 시작했다. 한가지를 하더라도 일시적인 것보다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확실한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조리분야를 택했다. 그후로 30년. 먹는 것보다도 조리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조리는 그에게 천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분야에 일찌감치 뛰어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조기교육에 조기직업처럼…

직업에 대한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 직업이 취미이고 취미가 직업이니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으랴. 더구나 요리노벨상이라 할만한 명장 타이틀까지 타게 되었으니 기쁨은 두배로 컸다. 좋아서 뛰어든 일이기에 어려워도 힘든 줄 몰랐다. 양파껍질을 까다가 눈물 콧물이 나와도 흥얼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의 성실함과 자신의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오늘의 영광을 가져다 주었다.

"30년 전만 해도 요리사라는 인식이 안좋았지요. 길거리 분식점이 유행하고 통닭을 고급요리로 치던 시대였으니까요"

서양요리 전문가인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의외로 된장찌개였다. 가장 자신있는 요리도 역시 된장찌개. 그러나 아무리 명장의 조리사라 할지라도 된장찌개를 끓이는 실력만큼은 결코 어머니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는 영원한 2등일 뿐이라고 자신을 낮춘다.

"어머니가 직접 끓여내는 된장찌개 속에는 정성의 맛도 들어있지요. 자식을 사랑하는 정성이 듬뿍 담겨 있는 어머니의 손맛까지 기술로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의 말속에 음식은 정성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그는 음식을 만들 때 기술 못지 않게 정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식속에는 정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맛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는 앰배서더 호텔 등을 거쳐 호텔 캐피탈에서 조리담당 최고 책임자로 있는 지금까지 줄곧 조리에만 매달려 왔다. 카투사로 복무한 군대에서도 조리를 담당했다.

조리사로는 드물게 얼음조각과 야채 및 과일조각 분야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관광서비스 경진대회 얼음조각 시범상을 3년 연속 수상하기도 하였다. 주방설계분야에서도 명성이 높다. 88년 오픈한 호텔 캐피탈의 원년멤버로 주방설계에서 배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그가 직접 했다. 외국식으로 주방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개선했다. 동선이 축소될 수 있고 많은 작업능률을 올릴 수 있도록 꾸몄다. 그의 손때와 정성이 곳곳에 배어있는 호텔캐피탈 주방은 이후로 다른 신축호텔에서 줄줄이 견학을 올 정도로 모델케이스가 되었다.

조리업계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 그동안 해온 일도 많고 하는 일도 많다. 현재 맡고 있는 감투를 다 꼽으려면 열손가락으로도 모자란다. 한국조리사회 명예회장. 특급호텔 총주방장협의회 총무. 조리기능장협의회 고문. 국가기술자격 검정 기능장 감독위원. 등등.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에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 식음료 공급 자문위원까지 맡았다. 한국관광대학 겸임교수와 국내 하나뿐인 성택 조리과학고등학교 현장지도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을 많이 받고 있지만 시간이 모자라 못 나가는 형편이다.

지난 9월에 개최한 2000서울국제요리축제에서는 행사개최의 산파역인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여의도에서 열린 이 행사는 요리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7만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대 성황을 이뤘다.

한국국제요리연구회 고문으로 있으면서 요리사이트(www.cookid.co.kr)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지난 9월 홈페이지를 오픈한 이후로 반응이 좋다. 아직 컨텐츠를 다 채우지 못한 상태인데도 방문객이 갈수록 늘고 있다. 다른 사이트와 차별화된 정보를 많이 제공하려고 한다.

그는 내년에 팔도전통음식축제를 추진중이다. 그는 북한과도 음식교류가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더 나아가서 세계요리축제로 행사를 발전시킬 계획이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음식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일본은 우리의 전통음식인 김치조차도 자신의 음식으로 개량 발전시키지 않았습니까? 최소한 우리음식은 우리가 살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 행사를 개최하고 행사를 통해서 알리고 홍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요리업계인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양식이 전공이면서 한식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음식을 알아야 겠다는 생각에 갈비구이와 된장찌개등을 몇 년을 두고 계속 연구했다. 그것이 명장으로 선정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가 만들어 내놓는 갈비는 많은 손님들이 비법을 알려달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제가 처음 요리를 배울 때만 하더라도 처음 3년 동안 음식에는 손도 못댔지요. 하루종일 그릇 닦고 후라이팬 닦고 야채 다듬고 심부름만 하다보니까 3년이 흘렀더군요. 그러나 하루 빨리 기술을 익히고 싶어서 아무도 없는 밤에 몰래 주방에 들어가 나홀로 조리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재료를 집으로 사가지고 가서 혼자 끙끙대며 공부했지요. 그때는 주방장한테 얻어맞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리인도 얼마든지 비전이 있습니다. 현재 50여개 대학에 조리과가 있고 조리 전문고등학교까지 생겼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식은 바로 만들어서 그 자리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력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한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조리입니다. 누구라도 먹어야 사는 만큼 자신이 이분야에 취직을 안하더라도 배워서 손해볼게 없지요.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 입고 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의식주가 아닌 식의주라고 부릅니다"

작년 11월에 방배역에 한국국제요리 아카데미라는 요리학원을 열어 뜻맞는 사람 3명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정년퇴직 후에도 요리라는 취미를 계속 살리고 싶어요. 그래서 학원을 열었지요. 어떻게 하면 취미도 살리고 평생 익힌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학원을 열었습니다. 돈을 벌려고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익 목적이 아니라 우리나라 음식문화 발전에 기여를 하고 싶어요. 아직은 문을 연지 얼마 안돼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했지만 다른 곳과는 차원이 다르게 운영해 볼 생각입니다"

쉬는 날은 강화도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내려간다. 휴일만큼은 외로워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음식을 직접 만들어 대접한다. 아예 시장을 봐가지고 어머니를 찾아간다. 몇가지 준비한 재료로 양식이건 중식이건 아니면 한식이건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 어머니에게 바친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주변에 사는 동네 할머니들까지 모셔와 음식을 대접한다. 자식이 차려주는 음식을 들면서 즐거워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 너무 기쁘다.

시골에 가면 사람들은 그를 돌연변이로 취급한다.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80년 1월 결혼. 같은 직장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8남매중 차남인 그는 장남이 아니더라도 부모님을 모실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내에게 고마울 뿐이지요. 한푼 벌면 반푼 저축하고 나머지를 쪼개 쓰는 아내의 몸에 밴 절약정신 때문에 작은 집이나마 한채 가지고 있지요. 내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모든 것이 아내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음식은 한마디로 예술이라고 평한다. 입으로만이 아니라 눈과 후각과 촉각으로도 먹는 것이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들때 찬음식은 차게, 더운 음식은 덥게 먹여야 최고의 맛을 즐길수 있단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음식도 배부르면 맛이 없듯이 적당히 시장할 때 천천이 여유를 가지고 들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끝으로 그는 남편들에게 가정에서 가끔씩 요리를 해보기를 권장한다. 그 역시 시간이 있으면 집에서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한다. 있는 재료를 응용해서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남편들도 접시를 깨보세요.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만들어 보세요. 그러다 보면 가정화목은 물론이고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도 훨씬 두터워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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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00/11/03 10: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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