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247) 구두닦으며 이웃사랑 실천앞장 헌혈유공자 한대중

[클릭이사람] (247) 구두닦으며 이웃사랑 실천앞장 헌혈유공자 한대중

전남도청에서 11년째 구두를 닦는 한대중(47)씨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유공자 금장을 받은 헌혈 유공자다. 평생 직업인 구두를 닦으며 헌혈을 밥 먹듯 하고 힘들게 번 돈을 쪼개고 모아 이웃사랑 실천에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한겨울 추위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은 세상인심을 훈훈하게 녹여주고 있다. 

▲     © 피플코리아

지난 79년 처음으로 헌혈을 실시한 이후 갈수록 주기가 빨라져 최근 몇 년 동안은 평균 2주에 한번 꼴로 헌혈을 해오고 있다.
 
2003년 1월4일자로 119회 헌혈을 기록한 그의 헌혈행진은 지금도 쉬지 않고 계속 진행중이다. 

18살 때 처음 구두를 닦기 시작한 이래 혼탁한 세상의 때를 닦아내기라도 하듯 29년째 줄기차게 구두를 닦아오고 있다.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 있는 전남도청 본관 4층과 5층 계단 중간 1평반 공간이 구두닦이 인생으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는 한대중의 평생직장이자 소중한 일터다.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구두를 닦으면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친구의 권유로 광주시 광주고속 앞에서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고향은 광주 서구 유천동 150번지. 어린 나이에 광주 집에서 나와 당시 고아, 극빈자, 불우청소년 수용 시설이던 광주 임동 BBS에서 먹고 자면서 구두를 닦았다.  

속된 말로 집을 뛰쳐나온 가출청소년으로 구두를 닦으면서 선배들한테 맞기도 많이 맞았다. 피곤해서 하루 쉰다고 했다가 합숙하던 선배 10여명에 둘러싸여 반 주검이 되도록 집단 몰매를 맞기도 했다.

합숙소에서 얻어맞고 견디다 못해 도망 나왔다가도 막상 나와 보면 갈 데가 없어서 다시 들어가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19남매의 장남.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가족이다. 그러니 너나없이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에 오죽했으랴.

▲     © 피플코리아

사레지오중학교 1학년 학년말시험을 보던 중 그는 납부금을 못 냈다는 이유로 담임선생님한테 시험지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학교를 그만두고 자퇴를 했을까.
 
시험지를 빼앗은 선생님을 한때는 많이 미워했으나 지금은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다며 가볍게 웃어넘긴다.
 
아이러니하게도 하필 자퇴한 중학교 안에 야학학교가 생겨서 2학년 과정부터 거기 다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9년째 계속 구두를 닦고 있다. 구두를 닦으면서 야학 중학과정 마치고 고입, 대입 검정고시 합격을 했다. 광주고속 터미널에서 처음으로 구두를 닦기 시작하여 다음에는 충장로, 금남로에서 했고 그 이후로 광주시내 관공서는 거의 다 돌아가면서 해봤다.

지금 일하고 있는 도청 자리는 92년5월 후배한테 물려받았다. 야간대학 다니면서 도청에서 구두를 닦던 후배가 자기는 다른 일을 해본다면서 동구청에서 구두를 닦던 그에게 자리를 물려준 것이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 때에도 그는 우체국 앞에서 구두를 닦았다. 평생을 추운데서 일하다 보니 추위에는 누구보다도 잘 견디는 강한 사람이 되었다.

하루 평균 구두 100~150켤레를 닦는다. 한번 닦으면 2000원을 받고 한달 월정액으로는 7,500~1만원을 받는다. IMF사태가 터진 97년 이후로는 한번도 요금을 올리지 않고 같은 값을 받고 있다.

가족으로는  89년 10월1일 국군의 날 결혼한 사랑이 넘치는 아내와 사이에 남매를 두었다. 아내도 이곳 광주가 고향.

▲     © 피플코리아

IMF 이전에는 그런대로 구두를 닦아 벌어들이는 수입이 괜찮았지만 지금은 거의 생활비 밖에 안 된다.
 
공무원 아닌 공무원. 일하는 곳이 도청이다 보니 그의 근무시간 역시 도청 공무원과 똑같이 움직인다. 

그가 하는 일은 힘든 중노동이지만 보람도 있다. 한번은 그를 잘 아는 도청 사무관이 돼지저금통을 가득 채워서 좋은 일에 보태 쓰라고 2001년 추석 때와 2002년 설 때 그에게 가지고 왔다. 털어보니 각각 16만 4710원, 21만원의 거금(?)이 들어 있었다.

천금보다 소중한 그 돈을 그는 신장병을 앓는 학생을 위해서 쓰라고 온라인으로 붙여줬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그 사무관과는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다.

그에게 두 번씩이나 돼지저금통을 가져온 도청 사무관은 고등학교 때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돼지저금통을 터는 게 습관화된 분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의 입장을 잘 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 역시 마찬가지. 헌혈하고 무의탁노인 돕고 15년을 지냈던 광주 직업소년원을 지금도 자주 찾아 작은 선행을 베풀고 있다.

그가 지내던 BBS가 직업소년원으로 합쳐지면서 89년9월 결혼하기 전까지 직업소년원에서 지내다 보니 소년원과 정이 많이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구두를 닦는 손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눈 깜짝할 새 닦는 것 같지만 유심히 살펴보니 구두 한 켤레 닦는 데 자그마치 10번이나 손이 간다.

구두를 닦다가 까다로운 손님을 만나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닦은 구두를 잃어버린 바람에 새 구두로 물어준 적도 있다.

▲     © 피플코리아

광주에 대설 경보가 내려진 토요일 오후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이 추운 겨울에 그는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작은 온풍기로 시린 손을 녹이면서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다.

1년에 닦는 구두가 대략 5만 켤레. 29년째 닦고 있으니까 150만개 가까이 닦은 셈이다. 
 
세상을 빛내는 사나이. 구두를 닦으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한다.
 
이런 일을 하면서도 조금씩 쪼개고 아껴 모은 돈을 불우이웃 돕기에 기탁해오고 있다는 그가 더 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에게 실수는 없다. 이름표도 붙지 않은 구두를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반들반들 닦아서 정확하게 주인에게 갖다 준다. 구두를 보면 신발 주인의 성격은 물론이고 발끝에서 얼굴까지 모습 전체가 떠오른다니 이 또한 놀랍지 않은가.

“중학과정을 공부할 때 야학 교훈이 ‘참되게 살자’였습니다. 인생의 최대 행복은 베풀어주고,  아낌없이 주는 것이고, 죽는 그날 까지 시혜정신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우락부락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마음이 여린 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무슨 운동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구두 닦는 일 자체가 운동이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구두를 양손에 부챗살처럼 쥐고 1층부터 5층까지 쉬지 않고 오르락내리락 하니 그럴만도 하다. 

헌혈을 자주 하다 보니 이제는 2주에 한번씩 하는 것이 습관이 돼 버렸다는 헌혈맨. 헌혈은 자신과의 약속으로 죽는 날까지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래도 건강에는 전혀 지장이 없단다.

그는 헌혈뿐만 아니라 무의탁노인, 소년소녀가장 돕기 및 환경운동도 하고 거리질서 확립캠페인과 자연봉사운동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자신의 장기를 기증키로 서약하는 등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해오고 있다.

세상의 찌든 때를 모두 닦아내기라도 하듯 열심히 구두를 닦는 헌혈 유공자 한대중. 자신의 피 한 방울도 이웃과 나누면서 살아가는 그를 보면서 더불어 사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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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03년 1월11일 10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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