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86) 끼를 주체할수 없는 여자 이선화 (1)

[클릭이사람] (86) 끼를 주체할수 없는 여자 이선화 (1)
 
TV에 나오는 것은 뭐든지 똑같이 흉내를 냈다. 집안에서 돌연변이가 태어났다고 할 정도였다. "도대체 너는 누구를 닮았느냐"라는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으면서 자랐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읽고 인생 많이 살아온 애 같다는 소리를 어려서부터 들었다.

끼를 주체할수 없는 여자 이선화(37). 노래도 연기도 자신있다. 노래자랑에 나가기만 하면 상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그의 팔방재주를 보고 가수도 탤런트도 이보다 더 잘할수는 없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수는 없다. 그녀에겐 어릴때부터 간직해온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감히 말한다. 진짜 가수, 진짜 탤런트가 되고 싶다고…

코흘리개 어린시절. TV에 가수가 나오면 엄마의 홈드레스를 질질끌며 전선이 연결된 백열전구를 마이크 삼아 간드러지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부를수 있냐며 어른들이 칭찬을 해줄 때마다 진짜 가수가 된것처럼 신이 났습니다. 또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감정을 넣어 즉석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연기로 여러 사람을 울렸다 웃겼다 하였습니다.

'마마! 고정하시옵소서. 왜 이러십니까? 정말 너무 하십니다' '여기가 어느 상전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거냐' 등 사극을 보면서도 그 역할마다 연기를 모두 소화해 냈습니다.

주위에서 저아이는 커서 가수나 탤런트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초등학생때 소풍 등 학교 행사만 있으면 마이크를 잡고 직접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학예회 때도 모든 끼를 보여 저게 뉘집 딸이냐며 박수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중2때 교회에서 연극발표회가 있었는데 제 역할은 술집 기생 춘자역이었습니다. 진짜로 착각할 정도로 실감나게 기생연기를 하여 그때부터 별명이 춘자로 통했습니다.

이상하게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긴장 초조 불안에 휩싸이다가도 무대만 서면 그 떨리던 것이 다 어디가고 당당해져 관객들을 사로잡고 말겠다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무대에 서면 꼭 신들린 사람처럼 확확 스쳐지나가는 분위기, 표현, 감정등이 뇌리를 때리면서 관객들의 마음이 한눈에 읽어집니다.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의 추천으로 KBS 합창단에 입단하면서 예술학교 진학을 간절히 원했지만 부모님은 끝내 그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감고 있거나 눈을 뜨고 있거나 항상 무대에 서서 노래 부르며 박수 갈채를 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지하철 6호선 개통기념 경축행사 노래자랑.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다 즉석에서 참가하여 금상을 받았습니다.

삼성 노래방기기 시판기념 노래자랑에서 선풍기를 타오기도 했습니다. 변산해수욕장에 여름휴가를 갔다가 현수막을 보고 우연히 참가한 노래자랑에서도 그리고 최근에 교회에서 개최한 가족 찬송가 부르기 경연대회에서도 대상을 받았습니다. 결혼식 축가는 고정출연하듯 다니며 불렀습니다.

1983년 모 신문 주최로 전국남녀신인가수 선발제전이라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번이 기회라며 한번 나가보라는 언니의 권유로 부모몰래 응시하였습니다. 헤드폰을 끼고 이불을 뒤집어 쓴채 오로지 혼자 연습하였습니다. 드디어 예선의 날이 왔습니다. 너무 떨렸습니다. 나를 더 떨리게 하는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기타를 치는 사람. 정말 가수같은 사람. 지도를 해주는 사람. 한사람에 몇명씩 따라와서 응원해 주는 모습들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에 내자신이 왜 그리도 초라하고 작아 보이던지… 그당시 작곡가 사무실에서 레슨을 받는다는 것 조차도 몰랐습니다.

순간 이름을 부르며 서있는 작은언니. 열렬한 후원자이며 지주였던 언니가 그때 너무너무 고맙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무도 내게 노래를 지도해준 사람은 없지만 '그래 차분히 내목소리대로 부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애절했습니다. 집에서조차 노래에 대해 인정을 해주지 않았기에 더더욱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습니다.

몇천명이 응시해서 50명이 1차예선에 합격하였습니다. 본선에 뽑힌 50명중에서 최종 7명만 선발하여 가수자격이 부여된다고 했습니다.

1절이 끝나면 심사위원석 에서는 '그만! 수고했습니다. 다음' 이런 순으로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100번대가 지나고 거의 200번 순으로 다가왔습니다. 드디어 내차례가 왔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1소절을 끝내고 2소절째 나가려는데,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그만하면 됐다는 심사위원석의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순간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언니와 함께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펄쩍 펄쩍 뛰었습니다. 치열한 예선 본선을 거쳐 결국 가수의 자격을 얻는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 그 쟁쟁한 작곡가 선생님들의 얼굴을 처음으로 봤습니다. 심사가 까다롭다고 하더군요. 황문평 선생님을 비롯한 15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대성하겠음. 앞으로 유망주"라는 평을 받았을 때 '그래 내인생은 이제 시작이구나. 그렇게 꿈꾸던 가수가 되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하늘을 날듯 기뻤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큰 행복을 맛본 순간은 첫번째 KBS 합창단 합격이었고 두번째는 가수의 자격을 얻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기쁨도 잠시. 집에서는 가수라는 직업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공무원 집안. 그 당시만 해도 부모님들이 쾌히 승낙하던 시대는 아니었지만 나는 꼭 가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가수는 오로지 슬플때나 괴로울때나 노래로 팬들에게 기쁨과 평안함을 주는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수란 직업이 어떤 것이며 밤무대에 서는 것과 어두운면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주위분들로부터 들었을때 내겐 너무도 충격이었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말들이었고 그렇다면 내가 가수의 꿈을 계속 밀고 가야만 되는가 아니면 접어야 하나 하는 갈등과 착각 그리고 혼돈에 빠졌습니다.

혼자 힘으로 가수가 되어 정말 노래를 불러서 남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가정사정으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는 가정의 시각에 부딛혀 어찌할바를 몰랐습니다. 집에서는 '그래 이젠 네가 노래 잘한다고 인정해 준다. 그 이상은 절대로 안된다'고 했기에 절망과 고통의 시간을 수없이 가져야만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때로서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절망감에 아끼고 아끼던 카세트를 집어 던지고 다시는 노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진정 하기 싫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어쩔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기에 더욱 원망스러웠습니다.

신인들의 연기나 주부가요 열창을 보면 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발동하기 때문에 한동안 TV시청을 피했습니다. 복음성가 가수로 나가서 양로원 고아원등 공연도 하고 싶었지만 어떠한 길로 나가야 될지 몰라 고민한적도 많았습니다.

나보다 더 능력있고 잘난 사람도 숨은 재주를 썩히고 있는 경우가 많을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지만 타고난 끼는 어쩔수 없었습니다. 노래 연기 개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미친사람처럼 노래하며 연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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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00/10/17 10: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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