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라는 이름으로 제244호> 다시 가을을 보내며

한시간 빨라진 퇴근시간이 내 마음에 얼마나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지...
불과 몇 일전 만해도 퇴근시간에 나가면 어둠으로 짙게 깔린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불빛밖에 만날 수 가 없었는데 이젠 갈색으로 곱게 퇴색이 된 늦가을의
풍경과 만나게된다.

다른해 보다 조금 빨리 찾아온 추위로 가을산도 더 빨리 겨울을 준비하고 있겠지만
마음에만 두었지 올핸 한번도 오르지 못한 가을 산...

우기로 짧았던 여름을 보내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가을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건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때문이 아니었을지...

아침 저녁 만나지는 등산객 차림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언제쯤이면
저렇게 저 사람들처럼 평일에 여유있게 하루를 보낼 날이 있을까 싶은 생각을한다.

종점에 서게되면 어느해나 마찬가지의 생각이 들지만
올해도 에외가 아니듯이 내가 서 있는곳이 어디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을 만큼
앞만 보고 달려온 한해...

새해를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
더위로 흐르는 땀을 훔쳐낸지가 얼마안되는 것 같은데 벌써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어야하고 많지는 않지만 첫눈이 내려버렸으니...

앞만 보고 달리던 인생이란 여정에서 급브레이크를 잡고 돌아보니 어느덧 한해의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11월의 문턱에 와있다.

볼에 와 닿는 바람이 섬뜩하게 시리면서도 그 느낌이 싫지 않은 11월의 바람...
나는 11월의 그 예리하고 차가운 바람을 좋아한다.
아마 그 바람 때문에 ..
그리고 한 달을 남겨둔 한해를 정리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주는 달이기에
11월을 더욱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전에 보다 훨씬 거울을 들여다 보는 횟수가 많아진 것을 스스로 느낀다.

아침 화장을 하면서도 저녁에 화장을 지우면서도...
화장솜으로 부지런히 화장을 지워내고 스킨을 찍어 바르면서
거울 안에 앉아있는 내 모습에서 문득문득 타인을 느낀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렸는지? 수분기 없이 메말라버린 피부에
꺼칠꺼칠한 머릿결...내가 알고있는 내 모습이 아닌 피로와 짜증에 절어버린 낯선얼굴.....

부정할수 없는 모습에서 난 내가 알고있는 내 얼굴이 아닌 타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얼른 일어나 세면대로 달려간다.

언제쯤이면 나도 내모습에서 푸근함과 넉넉함을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수있으려는지...

사람은 가끔 자신의 모습에서 타인을 느끼며 살기도 한다.

세월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연륜이 쌓일수록 여유있고 삶을 관조할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질줄 알았는데 세월은 그나마도 허락을 하지 않기때문인것 같다.

다시 가을을 보내며...
그토록 소원하던 가을이었지만 ...
가을엔 나를 바꾸어줄 무슨일인가가 생길줄 알았지만...
내게 남겨진 가을색채는 여전히 보랏빛을 띤채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자운영
 
2002년11월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