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71) 밑바닥서 건져올린 작은행복 최복열

[클릭이사람] (71) 밑바닥서 건져올린 작은행복 최복열
 
평범한 삶. 이보다 더 행복은 없다. 하루세끼 밥먹는 사람들이 미치도록 부러웠던 과거를 그는 잊지 못한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한다. 누군들 보릿고개 시절이 없겠나 만은 이보다 더 춥고 배고픈 시절을 보낸 사람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최복열(44). 지금은 관세사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 그러나 지금의 자리에 올라서기 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가파르고 험난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다 해도 두눈 부릅뜨고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결코 부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갈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해도 이겨내겠다는 의지와 자신감만 있으면 언젠가는 쨍하고 해뜰날이 온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다. 그는 평범한 삶이야말로 그 어느것과 비교할수 없는 최고의 행복이란 것을 뼈져리게 체험했다.

정규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4학년이 전부. 가난이 웬수였다. 초등학교조차도 마치지 못할 정도로… 지척에 득량만이 보이고 뒤로는 봉두산자락으로 둘러쌓인 소쿠리 마을인 전남 보성 매곡이 고향. 가난한 농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코흘리개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단 한뼘의 논두렁조차도 없는 산촌생활. 초등학교 4학년때 가난에 지친 가족들은 가재도구를 챙겨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짐을 푼 곳은 마포 공덕동 지금 유명한 최대포집 근처. 2평남짓 구석방에 세들어 6명의 식구들이 뒤엉켜 살아간다. 한동안 서울 아이들에게 전라도촌놈이라는 별명을 얻어 무시당하며 지낸다.

그러던중 근처 용강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고등공민학교가 있어 다니게 된다. 1학년부터 6학년 과정이 한교실에서 이루어진다. 다행이 교대졸업직후 배치된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 계셔서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무난히 통과할수 있었다.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도 검정고시로 마쳐야 할정도로 집안이 어려웠다. 당시 모래내에서 고물상을 하던 형님이 성산동 산마을에 천막만치면 살수있다고 하여 그곳으로 옮긴다.

드디어 우리집을 갖게 되었다. 비록 무허가 천막이지만 그나마도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물이 없어 산너머까지 물지게로 매일 져 날라야 했다. 너나할것 없이 하루 두끼 먹기도 힘든 달동네. 굶기를 밥먹듯 했다. 화장실조차 없어 이리가나 저리가나 산에는 온통 오물천지였다.

그런 환경때문에 장티푸스가 발발한다. 우리 가족도 걸리고 만다. 전염병이 온동네를 휩쓸어도 손하나 쓸수 없는 최악조건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아무탈없이 오늘까지 살아남았다는 자체가 행운이 아닐까?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온식구가 생활전선에 나선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그는 어린나이에 광화문 일대를 누비며 신문팔이로 나선다. 온종일 수제비 한그릇에 배를 채우는 생활이 시작된다. 그때 그 수제비가 어찌나 별미던지 그맛을 못잊어 지금도 즐겨 먹는다. 어린마음에도 공부를 해야 출세할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밤에는 야학에서 중학과정을 공부한다. 그러나 야학을 다니는 행복도 잠시뿐. 성산동 달동네가 철거되어 성남 대단지로 이주하게 된다. 야학을 포기하고 성남에서의 서글픈 삶이 시작된다. 야학조차 못할 정도로 징허디 징헌 가난…

이곳에서도 역시 천막을 치고 살아간다. 칼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천막생활. 그해 겨울은 지독히도 추었다.

그러나 산목숨에 거미줄 치란법 없었다. 큰 형님이 왕십리 중앙시장에서 배추 상하차 인부로 일했다. 근처에 쌀가마 상하차하는 트럭 밑에가면 쌀 부스러기가 수북하게 쌓인다. 큰 형님덕에 빗자루와 쓰레받이만 있으면 땅바닥에 흘린 쌀을 얻을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트럭밑에 흘린 쌀부스러기를 모으는 일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끼니를 해결해 나갔다.

하지만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쌀부스러기나마 한두끼 먹을 것 밖에 얻을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15살때 빵공장에 취직한다. 한동안 아무 생각없이 공장일에 충실하고 틈틈히 독학으로 공부를 한다.

바닥 생활.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인들 못하랴. 구두닦이. 껌팔이. 체면도 부끄러움도 그에겐 모두 사치였다. 학벌없고 환경이 불우한 아이에겐 주변의 문제아들이 꼬여 드는 법.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갔다. 불량배 조직에 끌려들어갈뻔 했다가 천신만고끝에 빠져나온적도 있다. 죽어도 싫다고 버티는 그를 불량배들도 더이상 어쩌지 못하고 대신 초주검이 되도록 집단구타하고 풀어준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얻어낸 자유라고나 할까?

공부 공부 공부… 공부를 해야 미래가 열린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공부에 대한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가하게 공부만 할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드디어 1974년에 검정고시로 모든과정을 마무리한다. 초중고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로 마쳤다. 악조건을 딛고 따낸 인간승리. 1년남짓 성남시 광섬 새마을 중고등학교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봉사를 한다. 집안이 어려운 아이들에겐 배움의 등불인 야학.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덕분에 그는 어느새 야학의 학생에서 선생님으로 신분이 바뀐 셈이다.

1975년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인천세관에 임용된다. 이때부터 형편이 나아진다. 세관공무원으로서 긍지를 갖고 착실하게 공복의 길을 걷는다. 1978년 중매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만난지 3년만에 결혼을 한다. 박미자(43). 소설에나 나올법한 구두닦이 껌팔이 출신 남자와 미스 성남출신의 미녀가 만나 부부가 된 것이다. 1984년 국제대 영문과에 입학한다.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이 됨으로써 학업에 대한 갈등을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집념은 끝이 없다. 이번에는 관세사 시험에 도전한다. 4번의 낙방끝에 드디어 1995년에 관세사 시험에 합격한다. 처음 도전에서 합격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하면 된다는 집념의 결실이다. 퇴직후 1996년에 태평양 관세사무소를 열었다. 지금은 제법 넉넉한 생활을 꾸려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상당한 위치까지 올라와 있음을 실감한다. 사회활동 또한 활발하게 하고 있다. 아내와 두딸의 아버지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관세사 최복열이 되어있다.

위로 형이 3명이나 있는 막내아들이면서 부친을 돌아가실때까지 모시고 살았다. 말년에는 치매로 5년이나 고생하신 아버지. 부친이 87세로 돌아가시는 날까지 병수발을 다 떠맡은 아내가 너무 고맙다. 긴병에 효자없다는 옛말이 있지만 마음착한 아내는 아버지를 극진히 모신 이유로 효행상을 탔다.

최씨는 어려서부터 줄곧 일기를 써왔다. 써온 일기가 한상자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꼭 이겨내고 말리라며 이를 악물고 써온 일기장엔 당시 흘린 눈물자욱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일기장은 이제 가보1호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학문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올가을 학기 경영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중이다. 그는 자신이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에 어려운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기업체를 대상으로 무료상담을 해준다. 라이온스클럽 지역이사로 있으면서 사회활동도 많이 한다. 자신의 사무실에 검정고시 출신 여직원을 두명 채용할 계획이다. 이미 모집공고도 냈다. 그들에게 작은 용기라도 심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현직 공무원시절엔 외화밀반출범 검거 유공자 표창등 숱한 상을 탔다. 그만큼 타의 모범이 되는 공직생활을 했다는 반증이리라.

누구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그만한 댓가가 주어진다고 항상 생각하며 그는 오늘도 평범하고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무기로 맨땅에 헤딩하듯 무에서 유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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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people365@korea.com>

2000/08/22 10: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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