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 나도 할말있다 제29탄

-반갑다 친구야 2-

졸병들을 놀려두면 안된다고 고참들은 말을 한다. 맘편하게 놔두면 딴생각하고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굴리고 기합받는 것은 반대다. 왜냐면 가해자는 즐겁겠지만 막상 당하는 약자입장에서는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느누구에게 하소연할방법이 없으니 꼼짝없이 당할수 밖에는 없다. 그러니 이래 저래 졸병은 괴로운게 군대생활이다.

그런데 구세주를 만났다. 일등병쯤 되었을때였다. 내밑으로 졸병은 겨우 한명인데 고참은 줄줄이였다. 먹이사슬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줄줄이 한풀이 하듯 때려대는 것이 하루의 주된일과였던 시대. 하사관은 장교들한테 당한다. 졸병하사관은 고참하사관한테 당한다. 졸병하사관은 병장들과 티격태격하고 또 그 아래로 그런식으로 내려가면서 괴롭힌다. 먹이사슬의 끝은 가장 막내. 그러니 졸병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동네북도 이렇게 터지지는 않을 것이다. 졸병들은 내무반에 들어오면 고참이 무서워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주눅이 들었다.

우리부대 우리내무반으로 누가 나를 찾아왔다. 누굴까 궁금해서 가슴이 뛰었다. 워낙 삭막한 전방 군대이었기에 사람이 그리웠던 마음에 소풍가는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했더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내무반에 들어오자 마자 내 얼굴을 보더니 "야, 명수야!" 하면서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는 "너찾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참 세상 좁다"면서 한바탕 큰소리로 웃어댔다. 계급장을 보니 육군 중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내입장으로서는 구세주였다. 나도 모르게 "야 이새끼 정학이 아니야"하면서 내집 안방처럼 큰소리로 떠들어 댔다.

서로 손을 꼭 잡고 한참을 떠들어대고 나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고참들이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 보았다. 나를 쏘아보는 내무반장의 잡아먹을듯한 눈빛은 "새카만 졸병녀석이 어디 겁대가리가 없어서 왕고참보다도 더높은 말뚝 중사한테 반말이냐"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순간이후로 나는 얼어붙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눈짓으로 동창녀석에게 나가자고 신호를 보냈다. 낌새를 알아차린 친구는 내무반장에게 잠깐 데리고 나갔다가 들어오겠다는 말을 하고 허락을 얻어냈다.

그제서야 나는 긴장을 풀었다. 친구는 우리부대로 파견을 나온 것이다. 알고보니 그도 포병이었던 것이다. 부대는 달라도 주특기가 같은 군인들을 모아서 단체로 교육을 시키는 이를테면 집체교육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녀석은 고참틈에 끼어 주눅든 나를 잠시나마 즐겁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나서 친구는 나와 헤어졌다. 친구가 떠나자 고참이 나를 불렀다. 군대생활이 뭐 애들 껌씹는 것처럼 하찮아 보이냐고 트집을 잡아 구타를 하고 괴롭히는 것이었다. 몇시간 즐거웠던 만큼 고참들로부터 당한 구타와 기합은 말로 표현할수 없을만큼 가혹했다. 아무리 군대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억울하지만 꾹 참았다. 대들면 대들수록 돌아오는 것은 더욱 심한 구타와 폭력과 기합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하여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졸병은 졸병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 꽉막힌 군대에서 정보라고 해봤자 무슨 대단한 빅뉴스가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식이었다.

'어떤 고참이 어제 기합을 주는데 이단옆차기로 나를 공격하였다. 그런데 슬쩍 몸을 돌려 공격을 피하자 고참이 그만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아픈 표정으로 오만상을 찡그리는 고참이 고소하고 시원해서 10년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너무 통쾌해서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데 참느냐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어찌나 입술을 세게 깨물었는지 나중에 보니까 내입술에서 피가 나는 것이었다' 등등.

그러면 말하는 졸병 신이나서 제기분에 고무되어 떠들어대고 듣는 졸병 역시 동병상련의 기분으로 펄떡펄떡 뛰면서 좋아한다.

사회에서라면 씨도 안먹히는 허접쓰레기 같은 농담따먹기지만 그것도 정보라고 귀를 쫑긋하고 서로 주고 받으며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간다. 결국은 부메랑처럼 고참귀에까지 들어가 다시 구타를 당하는 해프닝도 가끔씩 벌어진다.

맞는 것도 무슨 얘기거리라고 졸병끼리 서로 만나면 고참을 안주삼아 씹고 또 씹는다. 자신이 얼마나 유치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군대라는 특수사회가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다음에 이야기 계속됩니다.
 
김명수

2000/02/18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