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 나도 할말있다 제20탄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2-

우리부대는 군대에서 이사를 갔다. 원통으로. 말로만 듣던 전방. 오지중의 오지였다. 내가 차마 그곳으로 갈줄이야.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그러나 어쩌랴. 현실인것을. 부대가 이동하는데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 다시 진지를 구축하고 숙소를 지었다. 군대서 하는 말이 있다. 까라면 까고 하라면 하라는 말. 못하는 것이 없고 안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겨울이 되면 날이 너무 추었다. 살이 떨어져 나가고 오줌발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러나 경치는 절경이었다. 바로 백담사가 멀지 않은 설악산 줄기였다. 한계령을 끼고 있는 인제원통 내설악이었다. 고개를 넘어가면 외설악이다. 그러나 군대에 있을때는 내설악의 비경을 보고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저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고 달리고 기합받아야 하는 지옥같은 장소였을 뿐이다.

군에 있는 동안 나의 생각은 정지된 느낌이었다. 머리가 멍멍하고 텅빈 느낌. 나뿐 아니라 졸병들 모두가 그랬다. 야간 근무. 30분이다. 얼마나 추우면 한시간도 아닌 30분일까. 안가본 사람은 모른다.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한겨울에 단 30분만 깊은 내설악 골짜기에 들어가 발을 동동거리며 보초를 서면 온몸이 얼어붙는다. 그때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 물론 속으로.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노래에 취하고 자기기분에 취해서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흘러내리는 눈물이 그대로 얼어붙는다.
 
총을 어깨에 메고 계속 제자리 뛰기를 해야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 장갑을 낀 손은 추워서 연신 마주대고 문지르며 비벼댄다. 그러나 아무리 뛰고 비벼보아도 살을 에이는 추위를 막아낼수가 없다. 그래도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 계속 헛소리를 해대면서 별짓을 다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엇이 내앞으로 기습을 한다.
 
간첩이 침투한 것이라고 느낀다. 순간 머리털이 곤두서고 간이 오그라 붙는다. 총을 겨누고 암호를 묻는다. 그러나 알고보면 산짐승이다. 10년감수 한것처럼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산짐승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 보초병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많이 놀랐다. 그러나 그것도 면역이 되다보니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짧은 30분동안에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을까. 고향에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순간 고향생각에 푹빠진다. 그러다가 자칫 엉뚱한 샛길로 빠지고 싶은 유혹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갈까 말까. 이대로 고향으로. 모든 부대원이 잠들고 나만 혼자 근무를 서고 있는 지금 이순간만은 내가 왕이다. 그러나 금방 현실로 돌아온다.

군대라는 생각이 다시 머리속을 지배한다. 오줌이 마려워 오줌을 누면 그대로 고드름처럼 얼어붙는 기분이다. 그런 생각이 났다. 얼어붙는다. 얼어붙는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계곡도 물도 나무도. 아니 소리도 얼어붙는다. 때리는 고참이 미워서 보초를 서면서 욕을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나혼자 떠들어대던 말도 꽁꽁 그대로 눈보라 찬바람에 섞여 얼어붙는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봄눈녹듯 녹아흐른다. 모든것이 녹아 흐른다. 고참한테 보초를 서면서 욕을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 말까지 봄날씨에 풀리고 녹아서 흘러다닌다. 말도 나무도 헛소문도 다시 그때 그대로 녹아 흐른다. 그렇게 엉뚱한 생각까지 떠오른다. 보초를 서는 짧은 30분동안에 말도 안되는 나만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군대이기 때문에 그렇게 유치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는 것없고 하는 일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저 먹고 자고 때리고 얻어맞다보니 하루가 그날 같고 오늘이 어제같다.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다보면 30분이 지난다. 발을 동동거리며 내무반으로 들어와 다음 보초병을 깨운다.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운다. 물론 나보다 고참이다. 고참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그러나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를 않는다.

"김상병님, 보초교대시간입니다. 일어나십시요" 몇번을 흔들어 깨우지만 몸만 한번 뒤척하고 일어나지를 않는다. 할수 없이 다시 총을 메고 근무지로 나간다. 일어나지 않는 고참대신 졸병인 내가 근무를 대신하는 것이다. 30분이 지나 다시 돌아온다. 고참 한명은 대신 내가 서주고 다음 근무자인 고참을 깨운다. 그러나 또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러다 보면 말뚝 근무가 된다. 새벽이 되면 그제서야 딴소리를 한다.

고참은 졸병인 나를 불러세운다. 안깨웠다고 트집을 잡는다. 그리고 끔찍하게 몽둥이 찜질을 한다. 정말이지 억울하고 분해서 그자리에서 총으로 갈기고 싶을 정도로 적개심이 든다. 그러나 이빨을 악물고 참는다. 군대서 한순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면 평생을 후회한다는 것을 너무 잘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군대생활을 하다보면 하루 하루가 지나간다. 세월이 어떻게 흘렇는지 미쳐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고참들은 괴롭히고 졸병들은 마냥 당한다.

다음에 이야기 계속됩니다.

김명수
 
2000/02/04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