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38) 국립국악원 민속단 사물놀이 단원 이홍구

［클릭이사람］(38) 국립국악원 민속단 사물놀이 단원 이홍구
 
사물놀이처럼 신명나는 우리가락이 또 있을까? 그 중에서도 으뜸은 꽹과리가 아닌가 싶다. 한바탕 춤판이라도 어우러지면 온몸이 뻐근하다 못해 오금이 저릴정도로 신바람이 절로 난다.

꽹과리 인생 이홍구(35). 국립국악원 민속단 사물놀이 단원. 사물놀이 꽹과리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소문난 개구쟁이가 자라서 상쇠를 잡았다. 그는 왜 꽹과리에 미치도록 빠져들었나?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피나는 연습이 있었다. 학교에 적응을 못해 절반이상을 결석한 문제아에서 잘나가는 사물놀이 단원으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한 인물이다. 그가 살아온 인생 자체가 바로 누구나 노력하면 뭐든지 할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인 셈이다.

가난한 집안의 8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자라면서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산으로 들로 뱀도 잡고 고기도 잡고 풀도 뜯으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동네에서 풍장소리를 자주 들었다. 철없던 때였지만 그소리만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신명이 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 학교를 가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밥먹듯 결석. 절반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6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난한 집안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중학교 때도 전혀 적응을 못했다. 허송세월만 보냈다. 고입 연합고사를 봤지만 미역국. 공부를 안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 시골은 고입 연합고사에서 떨어진 학생이 많았다.

고입재수생이 되었다. 충남연산상고에 입학한다. 1학년 어느날. 수업중 정겨운 소리가 들렸다. 어릴 때 듣던 낯익은 소리.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소리나는 쪽으로 향했다. 진앙지는 바로 농악부. 농악을 하는 소리였다. 마침 아는 친구가 그를 알아보았다.

친구는 그에게 꽹과리를 쳐보라고 한다. 음악선생님이 그의 꽹과리 치는 모습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선생님은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그에게 농악부 가입을 권한다. 농악인생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그때부터 그의 운명이 바뀐다. 꽹과리와 함께 거듭난 인생으로…

2학년때 민속촌에서 15일간 농악을 배웠다. 꽹과리채로 이마와 손등 발등을 수없이 맞았다. 장작으로 허벅지까지 맞아가며 혹독하게 배우고 돌아왔다. 그래도 좋았다. 눈만 뜨면 꽹과리와 함께 살았다. 집에서는 시끄러울까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쳤다.

꽹과리를 손에 익히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노력의 대가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2학년으로는 처음으로 상쇠를 잡는다. 전국 초중고 농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누린다.

대학입시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프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탓에 형은 대학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형처럼 되기 싫었다.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앞에서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대학생이 되었다.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는 결심이었다.

당시 돈나올 구석이라곤 한군데도 없었다. 그토록 어려운 역경속에서 대학 1학년을 마쳤다는 자체가 기적이었다. 단국대 국악과. 국내 최초로 사물놀이를 전공하여 배우기 시작하였다.

사물놀이를 가르칠만한 강사가 없어 무용과 교수와 함께 남사당이나 여기저기 잘하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교육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전국 대사습놀이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학비를 벌어야 했다. 겨울방학때는 연탄배달부. 여름방학 때는 막노동꾼. 공휴일에는 벽돌공. 무슨 일이든지 닥치는 대로 했다. 다행이 2학년부터는 장학금을 받았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국방부 군악대 입대.

일병때 사물놀이 관람을 했다. 그 뒤 마음의 병을 얻는다. 꽹과리 소리가 귓전에 계속 맴돌았다. 그때부터 꽹과리 연습을 하기 시작하였다. 밤에는 구두굽으로 연습. 자면서 잠꼬대를 할정도로 꽹과리는 그의 생활의 전부였다. 무엇을 하더라도 만족을 못하고 마음이 불안했다.

그러나 꽹과리만 치면 마음이 편안하였다. 그렇게 꽹과리에 푹 빠져 있을 때 군악대장이 그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미쳤다고 영창까지 보냈다. 미치도록 좋은 꽹과리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그의 연습상대가 되어준 나무도 수난을 당했다. 군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여러그루 있었다. 짬만 나면 나무를 두들겼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나무를 괴롭혔다. 제대무렵엔 장구와 꽹과리 연습 상대가 되어준 아름드리 나무 세그루가 껍질이 모두 벗겨진채 말라죽었다. 아니 그에게 맞아 죽었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으면 그 큰 아름드리 나무가 말라 죽었을까…

1990년 11월 제대후 전문 공연단에 가입한다. 수입이 너무 없어 막노동판을 다니며 돈을 벌었다. 아파트 건설공사장 용역으로 막일을 하였다. 담당소장이 일을 잘한다며 남들보다 그에게 일당을 더 주었다.

수십층 높이의 아파트 지붕에 올라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난간쪽 마무리 공사일을 거들다 보니 믿고 쓸만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 일하면서 까마득한 땅을 내려다보면 아찔한 마음에 현기증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땅바닥에 내려가서 그냥 누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고된 노동이었다. 그러나 오직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소금처럼 아끼고 절약하여 4개월만에 4백만원을 저축하였다.

형님의 사업실패로 부친이 홧병을 얻어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돈을 벌어 편하게 살까 아니면 꽹과리를 잡아 고달픈 생활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을 한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중대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마침 대학 복학시기로 그는 그동안 개미처럼 모은 돈을 모두 찾아 손에 쥐고 다시 한번 심각한 갈등을 한다.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다. 돈으로는 그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굳힌다.

돈보다 사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오늘의 그가 있게 한 중대한 갈림길이었다. 1991년 4학년 2학기로 복학한다.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신분으로 충남도립관현악단 비상임 단원이 된다.

한번은 교수님이 불렀다. 남자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좀더 폭넓게 공부를 하라고 권한다. 대학 졸업후 '서울 예술단' 정단원으로 입단한다. 가무학 소속.

재즈댄싱도 하고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한다. 가무학이라고 해서 꽹과리도 치고 노래도 하고 한국무용도 배우고 뮤지컬 공연에도 참여한다. 입단 9개월만에 뮤지컬 공연에서 조연을 맡는 행운을 누린다.

92년부터 해외공연을 나가기 시작한다. 일본 중국 등 현지인들을 상대로 공연을 할때마다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1993년 7월. 무용음악을 해보고 싶어서 수원에 있는 '경기도립무용단' 창단멤버로 입단을 한다. 사물놀이도 하고 반주도 하면서 기술을 축적해 나간다. 드디어 수석단원이 된다.

1996년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쇠소리' 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때야 말로 그의 작품이 정립된 시기. 연습을 참 많이 했다. 시간이 없으면 단 5분이라도 꽹과리를 쳐보고 소리를 들어보았다.

그해 6월1일을 잊지 못한다. 경기도립무용단 수석단원자리를 버리고 국립국악원 단원으로 입단한 날이다. 그러나 초반에는 생각보다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전통보존 단체이기 때문에 자신의 음악을 버려야 했다. 공연을 통해서만 작품을 터득할수 있었다. 꽹과리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적응이 되었다. 학교등 여기 저기 불려다니면서 국악보급도 열심히 하고 있다. 대학강의요청도 몇군데 받았으나 사양하였다.

요즘 문화탐방 공연·토요상설 공연·찾아가는 국악원 지방공연·청소년을 위한 공연을 한다. 1년에 두 번 정도는 해외공연을 한다. 올해는 벌써 중국에 다녀왔다.

그는 낚시광. 주말에는 어머니가 홀로 살고 계시는 고향으로 훌쩍 낚시를 떠난다. 호젓한 낚시터에서 음악적 영감도 많이 얻는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난다는 자체만으로도 삶의 활력이 된다.

지금은 안정이 되었다. 여기에 맞는 음악도 할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는 남들보다 먼저 나와서 연습을 한다. 사물놀이 단원중에서 가장 연습을 많이 한다.

지독한 연습벌레. 그가 연습에 매달리는 이유는 꽹과리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틀만 안하면 감각을 잃어버린다. 머리속으로 알고 있는 그런 가락을 실제로 치면 잘 안되기 때문에 연습으로 극복을 한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혀안에 가시가 돋힌다는 말에 비유된다고나 할까?

이미 더 이상 오를데가 없어보이는 실력이지만 아직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의 겸손이 연습으로 이어진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 그를 국내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로 올려놓았다.

꽹과리는 사물놀이의 리더. 음악을 죽이고 살리고는 꽹과리의 역할이다. 서양오케스트라로 치면 지휘자라고 할수 있다.

그는 9순을 바라보는 대전의 지방문화재 송순갑옹처럼 꽝과리로 남은 인생을 걸고 싶다. 8순이 넘어도 상쇠를 잡을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계속 꽹과리 인생으로 살고 싶다.

그의 손끝에서 놀아나는 꽹과리 장단에 듣는 사람도 덩달아 신명이 난다. 주위의 온갖 반대에도 자신의 길을 꺾지 않은 탓에 그는 지금 사물놀이 장단에 파묻혀 누구보다도 신명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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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people365@korea.com>

2000/05/3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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