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37) 캡션파트너 티엠코리아 황문섭사장

[클릭이사람] (37) 캡션파트너 티엠코리아 황문섭사장

어느날 4살 6살난 아이들의 손에 200원짜리 소시지가 들려있었다. 가정형편이 기울대로 기울어 어쩌다 손님이 사주고 간 과자나 얻어먹던 아이들. 모처럼 먹어보는 별미?를 자랑이라도 하듯 조금씩 조금씩 아껴먹는다. 과자 하나도 제대로 사주지 못하는 비참한 심정을 삭이면서 아빠가 물끄러미 두아이를 바라본다. 6살난 딸아이가 "아빠 조금 줄까" 하면서 잰다. 아빠는 갑자기 상기된 얼굴로 아! 저것도 다 빚인데 누가 사 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절망과 좌절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다시 일어선 황문섭(39). 학생은 물론이고 영어를 배우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학 학습용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영어캡션 디코더 캡션파트너를 개발 생산 판매하는 티엠코리아 사장이다.

그의 사업은 아직도 정상궤도에 올랐다고 볼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IMF터널속에서 사업실패로 빚더미에 올랐다가 재기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한셈이니까…

그는 프로그래머로 91년부터 용산에서 컴퓨터 판매를 해왔다. 96년부터 컴퓨터 대형업체들이 난립하면서 마진폭이 크게 줄고 사업도 크게 위축되었다. 시장조사를 한답시고 청계천을 돌아다니다 먼지쌓인 캡션디코더 수입품을 보았다.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97년 12월 중순쯤 농아사회정보원의 김상화원장으로부터 한글캡션디코더 개발제의를 받았다. 정부에서 농아자를 위한 TV 자막방송을 하는데 그 자막을 볼수 있는 캡션디코더가 너무 비싸게 개발되고 있어 안타깝기 때문이란다. 저렴하게 공급할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면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서 수락했다.

엔지니어인 고향선배의 도움을 받아 개발에 들어간다.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 판매로 한푼 두푼 모은 재산을 몽땅 쏟아 부었다. 남들이 IMF라고 힘들어 하는 지금이야 말로 호기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개발투자를 했다. 친지들의 돈까지 빌려 개발을 완료할 즈음 뜻하지 않은 시련이 닥쳤다.

경쟁사인 KBS영상사업단에서 이미 제품을 완료했다는 말에 맥이 확 풀렸다. 늦게나마 개발은 하였지만 발빠른 경쟁업체에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다.

99년 5월 한글 캡션사업을 포기하고 기존에 해오던 영어 캡션 디코더를 업그레이드해서 판매하였다. 그러나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억대의 빚을 지었다. 참담한 심정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죽을 생각도 해봤다. 다시 이를 악물었다. 절대로 포기할수 없었다. 이대로 죽기에는 그동안 해온 노력이 너무 아깝고 억울했다. 한달안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그래도 안되면 모든 사업을 청산하고 다른사람들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신용하나 믿고 돈을 빌려준 고마운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에 괴로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시골의 큰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안에 일이 있으니 다녀가라는 내용이다. 형님을 만났다.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았다. 형님의 따뜻한 말한마디로 다시 일어설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형님은 "내가 돈이 없어 미안하다. 하지만 걱정말고 한번더 사고를 치라" 며 두손을 꼭 잡아주었다. 형님의 온기가 따스하게 전해졌다. 형님은 말을 계속했다. "너야말로 젊은데 뭔들 못하겠나. 형도 누나도 다 건재한데 어디간들 한가족 추스릴데 없겠나"

그는 전율처럼 흐르던 그때의 감동을 잊을수가 없다. 형님의 진심어린 충고에 눈물이 쏟아졌다. 돈 2억에 좌절을 하다니…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오기가 생겼다. 갑자기 힘이 나면서 다시 일어설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이튿날부터 딴사람이 되었다. 판촉물로 캡션디코더를 판매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뛰어 다녔다. 그리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캡션디코더를 구입한 손님들에게 고객지원을 시작하였다. 캡션디코더를 가지고 어학 학습을 하는데 필요한 S/W를 제공하기 시작한지 5개월만에 상황은 역전되었다.

주변의 유명한 캡션디코더 회사들보다 티엠코리아가 더 알려지기 시작한다. 홈페이지를 개설한지 1년만에 타업체에서 구입한 제품도 그의 회사에서 고객지원을 받을 정도로…

그는 누구에게나 살아가면서 고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자신도 어려운 고비가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용케도 잘 극복해 나갔다.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단순히 운명에 떠넘기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중학교때 밴드에 빠졌다. 트럼펫에 미쳐 3년을 보냈다. 당연히 성적이 뚝 떨어졌다. 한번 곤두박질 친 성적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오를줄을 몰랐다. 어느날 문득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매달렸다. 기적이 일어났다.

1학년때 반에서 꼴찌를 달리던 성적이 거짓말처럼 껑충껑충 오르기 시작했다. 졸업할때는 전교 3등으로 뛰어올랐다. 고교시절 꼴찌

라는 불명예와 우등생이라는 영광을 동시에 안고 졸업한 특이한 학생이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잠깐 한눈을 팔았다. 놀고 마시는데 정신 팔린 나머지 1학년 첫학기 성적은 꼴지. 교수님이 한심한 학생으로 취급하였다.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이후로는 졸업때까지 줄곧 장학생을 유지할수 있었다.

한눈팔다가도 정신 바짝 차리고 파고들면 끝을 보고마는 성격임을 알 수 있다. 그런 뜨거운 열정과 집념이 있었기에 실패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방황하고 허우적 거리다가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캡션디코더는 방송전파에 숨어있는 자막을 영상처리해서 글자로 읽을수 있도록 표현해 주는 제품으로 청각장애자를 위하여 방송에 이용하였다. 그러다가 어학학습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지금은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많이 이용되고 있다.

티엠코리아는 기존에 나와있는 캡션디코더를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학습용으로 사용하기 쉽고 편하게 업그레이드 하였다.

가령 미국 비디오영화를 볼 때 한글 자막이 있는 부분을 가리고 영어자막만을 나타내 주거나 영어자막과 한글 자막을 동시에 표현할수도 있다. 말이 빠르게 지나갈 때 비디오 리모콘으로 일시정지 시키면 자막이 정지하여 받아 적을수 있게 하였다.

이런 다양한 기능을 자랑하는 티엠코리아 캡션디코더는 어학학습기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SBS 파워잉글리시에 지금까지 납품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영어캡션디코더를 판매하는 회사가 여러개 있다. 황사장은 고급사양으로 개발되어 저가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은 티엠코리아가 유일하다고 자부한다.

티엠코리아 영어캡션디코더는 캡션파트너라는 브랜드로 시판되고 있다. 티엠코리아 홈페이지(www.tmkorea.co.kr)에 들어가면 원하는 관련정보를 얻을수 있다.

그는 손님이 사준 소세지를 입에 물고 있던 아이들을 생각한다. 힘들고 어려웠던 그때 생각을 하면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요즘도 가끔씩 아이들에게 슈퍼마켓에서 200원짜리 소시지를 사준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희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제대로 가르쳐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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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people365@korea.com>

2000/05/2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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