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35) 대교 사장직 버리고 가족동반 도보국토횡단 강학중

[클릭이사람] (35) 대교 사장직 버리고 가족동반 도보국토횡단 강학중

IMF로 나라경제가 뒤집어지던 바로 그해 국내 굴지의 출판기업 대교(주) 사장직을 스스로 버리고 컴백홈을 선언해 화제가 되었던 남자 강학중(43). 3년전 그는 준비된 실업자였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제정신이 아니다.

그가 새천년 시작과 함께 가정경영연구소(www.home21.co.kr)를 차렸다. 어려울수록 가정에 투자하라. 한번만 뒤집어 생각하면 만사가 편하다. 남들은 직장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마당에 사장자리를 제발로 걷어차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나선 그가 즐겨쓰는 말이다.

그의 소박한 선택에는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다. 한 기업의 경영못지 않게 가정의 경영도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결단은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역시 옳았다고 확신한다.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퇴사 후 곧바로 시작한 가족동반 도보 국토횡단. 98년1월2일 서울 출발. 양수리 평창 정선등을 거쳐 강원도 동해역까지 꼬박 걸었다. 하루 20km씩 14박 15일간 280km를 걷기만 했다. 가족모두의 새출발을 위해…그리고 가정의 평화와 화목을 위해…

숙소도 값싼 여인숙과 민박으로 해결하며 고생길을 자청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추억 이상의 의미가 담긴 값진 여행이었다.

진주가 고향으로 4남매중 막내. 초등학교 4학년때 서울에 올라온다. 어린시절 가난하지만 화목했다. 부모님은 어린 아들에게 무슨 일이든지 할수 있고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항상 불어넣어 주었다. 그런 부모님 덕분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때까지 학생회장을 할 만큼 리더십이 강하고 매사에 적극적 이었다.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고교시절 그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학교와 진로문제까지 겹쳐 한동안 방황을 했다. 스님이 되겠다고 두 번이나 집을 뛰쳐나와 입산한 적도 있다. 철없는 아들의 돌출행동은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돌이켜보면 스님이 되겠다기보다 소위 일류대 진학을 바라는 부모의 기대로부터 무작정 도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해인사로 들어갔다. 밥짓고 나무하고 큰 스님 수발드는 행자생활.

어느 날 아침 수소문 끝에 찾아온 어머니에게 끌려 집에 돌아간다. 얼마 뒤 또 가출. 이번엔 화엄사로 갔다. 스님은 아무나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집에 돌아왔다.

한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못 낸 기억도 있다. 형님의 학습지 사업도 맨손으로 시작했다. 대입낙방후 방황의 연속. 그때 형님이 잡아주었다. 차라리 자기 회사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의했다. 1976년 창업이후 20여년간 외길을 걸어왔다.

대교에 있는 동안‘일의 성취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바빠진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에 끌려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국과 핀란드로 유학을 다녀오고 경영자로 있으면서도 단지 회장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능력 이상의 대접을 받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스스로 원하던 일을 찾아 특수한 관계가 아닌 객관적인 인정을 받고 싶었다. 물러날 결심을 굳혔다. 물론 처음엔 주변의 반대가 컸다. 하지만 그에겐 가정이 더 소중했다. 비록 1억 가까운 연봉과 제법 잘 나가는 회사 사장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았지만 과감히 물러나기로 했다.

사퇴의사를 관철시키기까지 1년이 걸린다. 아빠와 함께 밥 한번 먹어보는게 소원이라는 아이들의 말이 귓전에 맴돌아 더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1997년 12월31일자로 회사를 나왔다. 물러나자 마자 곧바로 아내 그리고 두자녀와 함께 도보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2000년 1월 1일. 인사동에 간판을 하나 내걸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김인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문용린 교육부장관, 한준상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박금자 산부인과 원장, 최은순 변호사 등 각계인사 17명으로 자문위원단을 구성했다. 강 소장은 연구 활동보다는 이미 연구되어 있는 것을 필요한 가정에 잘 공급해주는 역할을 체계적으로 할 계획이다.

아내가 이틀만 없어도 엉망진창이 되는 집안 살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빈자리가 크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닫고 아내에게 한없이 감사할 줄 아는 남자. 별 탈없이 잘 커 주고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고마워 어쩔줄 몰라하는 아빠. 겉모습만 그럴듯한 조건부 화목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 더 열심히 물 주고 거름주고 가꾸겠다고 하루에도 몇번씩 다짐을 하는 남자.

그는 가정경영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서 가정의달을 맞아 다함께 생각해 보자며 ‘가족 이기주의’를 토론주제로 다루고 있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면 다른 가족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혹자는 “가족 이기주의란 가장 강력한 한국인의 종교이며 시민의식과 공공의식을 마비시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은 아름답다. 자칫 잘못하면 빠져들기 쉬운 ‘가족 이기주의’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봅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가족’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길은 무엇일까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그가 세상사람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기업에서 20년간 근무하면서 사장자리까지 오른 사람으로서 그는 가정도 하나의 경영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가정도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보다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경영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서 연구소를 차렸다.

새밀레니엄 시작과 함께 출발한 가정경영연구소. 직원 2명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그가 택한 새로운 삶의 주제는 가정이다. 강소장은 지금 사람들이 투자해야 할 곳은 주식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IMF이전에 다들 초고속 성장을 외치고 있을 때 그는 좀더 천천히, 그러나 차근차근 다져가며 가기를 원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회의 중심은 가정이고 가정은 부부관계가 출발점이자 핵이라고 강조한다. 좋은 부부관계가 좋은 가정을 이룰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가족의 핵이요 출발점인 부부 문제에 우선 순위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위한 기업문화 혁신에 주력하고 있다. 앞으로 사이버 상담을 위주로 지속적 활동을 펼 생각이다. 대다수 건강한 가족들의 공통점과 특성을 밝혀내서 문제가정의 치료보다는 사전에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 목표다.

사이버 부부 상담과 연간자료집 출판 그리고 부부 및 가족을 위한 다양한 행사 등도 계획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가족학전공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요즘 공부하는 재미에도 흠뻑 빠져 있다. 그는 인생의 목표를 길게 잡고 차근차근 실천해 나갈 셈이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가정경영연구소도 3년간은 수익을 내기보다 투자를 한다는 마음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편부모라는 말대신 한부모를 쓰자고 주장하는 강소장. 편부모라는 말속에는 웬지 사회적 편견이 가득 깔려 있는 기분이 들어서 거부감이 든다고 한다. 소년소녀 가장도 그런 의미에서 다른 말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주장한다.

강소장은 할 일이 많다. 지금부터 10년정도는 기초를 닦는 기간으로 잡았다. 현재 적을 두고 있는 가족학 박사과정도 마치고 남은 인생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 청사진을 짜나갈 생각이다. 인생을 길게 잡고 넉넉하게 일을 추진해 나가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만큼은 앞으로 더 살 수 있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후 15년동안 즉 70살까지는 인생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에 푹 빠지고 싶다. 무언가 사회를 위해서 보람되게 살아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 그리고 또 5년간은 그동안 해온 업무를 다음세대에게 인계 하는데 투자할 셈이다. 마지막 5년은 살아온 길을 총정리 하면서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겠다.

강소장은 "큰 욕심 안 부리고 조금은 느긋하고 여유있게 사는 재미도 쏠쏠하다"며 활짝 웃는다. 잘나가는 기업의 사장직을 버리고 가정으로 돌아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그의 환한 모습에서 건강한 삶의 활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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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people365@korea.com>


2000/05/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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