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20) 드라마작가 이미혜

［클릭이사람］(20) 드라마작가 이미혜

드라마 ‘아씨’의 작가 이미혜를 아십니까. 둥글 둥글 편안하고 따뜻한 인상. 맏며느리감. 아씨를 닮은 이작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하다 보니 지금도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화려한 수상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잘 안팔리는 작가. 그런데도 초조해 하지 않는다. 초연하다. 어찌보면 나태해 보이기도 하고…

그녀는 방송작가 협회에 가입하지 않는다. 아직도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상경력이나 작품발표수준으로 봐서 방송작가협회에 가입하면 여러 가지 특전과 부가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프리랜서의 길을 가고 있다.

글짓기상은 어릴때부터 헤아릴수 없을만큼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때 통신표란에는 공부시간에 소설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는 알림란의 담임선생님 글때문에 엄마한테 혼날까봐 침을 묻혀 그 부분을 지운적도 있다.

이작가는 중고등학교때 경쟁자 아이의 글을 읽으면서 늘 자신의 모자람에 두려움을 느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주여고시절 짝사랑한 국어선생님 시간에 노벨문학상을 타겠노라 흰소리를 친게 이정도에서 머문 것을 부끄러워 한다. 아무튼 그녀는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편지로 얘기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 경험이 많다.

그러면서도 작가로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고를 졸업하고 취직하기 쉽다는 과를 골라 고려대를 졸업 대한항공 항보실에 10년동안 몸을 담고 살았다.

그러면서 잘생긴 남편을 만나 사내결혼을 하고 딸도 낳고 아들도 낳고 집칸이나 장만하려고 그냥 구두쇠로 알뜰살뜰 평범하게 산다. 결혼때 구입한 도마를 20년이상이나 지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그러다 1988년 회사에서 밀려나면서 날이면 날마다 출근하는 증상에 시달린다. 마치 상상임신을 한 임산부 처럼. 대한항공에서 나온 뒤에도 계속 상상출근을 하였다.

아직까지 회사에 다닌다면 어떤 위치에 있을까. 어떤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등등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다 보면 하루가 거짓말 같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렇게 3년을 시달렸다.

그때 찾은 것이 방송작가연수원. 여름쯤이었다. 막 개원했을때라 원서를 내고 1기로 다녔다. 그를 3년동안이나 괴롭히던 상상출근 증상은 사라진다. 작품을 쓰는 재미에 빠져들다 보니 상상출근하는 버릇이 자연스럽게 치료된 것이다.

막연하게 뜬구름 잡는 식으로 방송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동안 안써서 그렇지 마음 한번 굳게 먹고 이제부터 세상을 깜짝놀라게 쓰고 말리라 다짐을 했다. 어느누구도 따라올수 없을 정도로 상상력이 풍부한 바로 이작가이니까…

아닌게 아니라 어떤 드라마나 영화공모 시나리오에 내기만 하면 몇백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선되는 것이다. 1991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 무녀 삼대의 한을 그린 ‘토구름’에 당선된다.

무녀에 대한 글을 쓰느라 강릉이며 속초 굿판을 쫓아다녔다. 발로 뛰어다니며 자료를 구하고 무당언어를 발굴하였다. 무녀에 관한 책을 마구 사들여 공부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그해 겨울 MBC 베스트극장 일회 공모에도 당선된다. 그 극본 공모에는 그녀가 낸 두 개의 작품이 동시에 최종심에 오르기도 한다. 촛불켜는 사람들로 SBS 창사기념드라마 극본 최우수상 당선.

한번 터진 상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봇물처럼 계속 이어진다. KBS문학상에 이어 1995년 KBS극본공모까지 당선되면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중 한명으로 떠오른다. 천만원 팔백만원 오백만원 사백만원… 원고료도 짭짤하게 모았다. 드라마 작가로서의 길을 잘 닦아놓은 셈이었다.

그러나 웬걸 그녀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휴머니즘 짙은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PD와 접촉해서 작품에 들어가면 늘 나가리(방송속어)가 되는데… 그녀의 자만심과 고집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방송사의 풍토탓일까?

아무튼 그녀는 방송3사 드라마 공모에 모두 당선된 보기드문 여성작가로 알려져 있다. 화제작 '촛불켜는 사람들'은 93년 월드 국제상 단막극부분에서 특별상 수상이라는 영광까지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이작가는 시대극과 사극을 집필하는 몇 명되지 않는 작가중의 하나로 향토짙은 걸쭉한 대사처리와 함께 심리묘사가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녀는 드라마를 쓰면서 각색을 안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녀 자신의 창작물을 쓸것도 많은데 각색은 안하겠다는 생각. 그러나 98년 '아씨'는 이철향 작가와 공동집필한다.

그 노작가와 공동집필하며 생긴 에피소드. 방송국측에서 알선해준대로 공동작업을 시작했으나 개성으로 똘똘뭉친 작가들의 알력으로 초기에는 육두문자가 오갈만큼 많이 싸웠노라 했다. 그러나 노작가의 인품이 워낙 훌륭해서 그 후 매우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시나리오나 드라마로 미쳐 못다한 이야기는 소설로 써놓았다.

그후 내노라 하는 사극전문 PD작가에게 큰 작품을 의뢰 받았으나 과감하게 거절한다. 과연 역사를 올바르게 보는 눈과 안목이 있는가로 갈등하다가 아직은 미흡하노라 거절한다.

그녀는 도서관에 다니며 역사를 바로보는 안목을 키워가고 있다. 늘 다니는 도서관 사서에게서 주부로서 이만큼 책을 많이 읽는다며 칭찬해줘서 기뻤노라 한다. 그녀는 요즘 정평구라는 인물에 푹 빠져 있다.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최초의 비행기 비거의 역사와 정평구라는 인물의 발굴과 인간과 자연과의 교감을 덕목으로 이미 시나리오를 완성시켜놓고 있다.

그의 작품은 말장난이나 가벼운 오락물보다는 해학적이고 토속적이고 걸칙한 분위기가 더 어울린다. 30년대 문예적인 특집극이나 문학적인 취향에 잘맞는다. 약간 진지하고 무거운 쪽으로 접근을 하다보니 흥행성보다는 덕목이나 주제가 뚜렸하고 진지한 작품성에 더 비중을 둔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다 보니 문학성이 자연스럽게 싹텄다. 국민학교 3학년때부터 연애소설에 빠져들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요즘 아이들은 책을 잘 안읽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휘력도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1993년 모 방송국에서 방송작가를 뽑아 1인당 1년에 100만원씩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지원해준 돈의 사용처를 따지지 않을테니 1년동안 각자 알아서 작품활동을 하라고 주는 돈이다. 그때 작품을 하나 만들었다.

항공사에 근무한 경험을 살려 미니시리즈로 대본을 써서 제출했다. 그리고는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항공소재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이었다.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제출한 작품과 소재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작품을 도용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뒤로 두고 두고 그때 일이 떠올랐다. 나이를 먹을수록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더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잊혀질줄 알았던 그때 일이 세월을 거슬러 마음속에 강하게 남는것은 그 작품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인지도 모르겠다.

작품에 관한한 한번 손을 대면 집요하게 파고들어 끝을 보고야 마는 성미의 이작가. 그녀는 전봉준이라는 인물을 소재로 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상상의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속으로 깊숙히 들어가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다음작품이 우리에게 어떤모습으로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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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2000/05/1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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