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인터뷰] (84) 사단법인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 노조위원장 이득춘

[클릭 인터뷰] (84) 사단법인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 노조위원장 이득춘

세상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는 남자. 온 세상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 3시 반이면 그는 어김없이 일터로 출근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꼭두새벽에 출근하기를 벌써 몇 십 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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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 이득춘(57) 노조위원장은 하루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강산이 몇 번 변하는 긴 세월을 그렇게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했다.

그가 몸담은 일터는 그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모두 새벽출근을 한다. 일찍 출근하기로 소문난 특이한 직장 경마장에서도 가장 일찍 출근하기로 소문난 마필관리사들이 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 1월1일부터 노조 위원장을 맡아 조합원들의 심부름꾼을 자처하고 있다. 172cm에 83kg. 얼핏 봐도 체격이 크고 위풍당당해 보인다. 위원장이기 이전에 마필관리사로 아직도 이 바닥에서 조교보가 안된 이유는 바로 ‘한 체중’ 때문이다. 조교보가 되기 위해 중량을 빼다가 결국은 실패를 했다. 40대부터 유지해온 지금의 체중을 아무리 노력해도 65Kg 이하로는 뺄 수가 없었다.

그는 66년 10월 뚝섬 경마장에서 경마클럽으로 말과의 첫 인연을 맺었다. 그때는 기마수로 일했다. 지금으로 치면 마필 관리사. 그것이 평생 직업으로 이어질 줄은 그때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제가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마필 관리사 일이 참 힘들었죠. 사람은 적고 말은 많고 임금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너나없이 춥고 배고프던 시절이라 밥 먹여 주고 용돈 몇 푼 쥐어주면 만족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오래 붙어있질 않았습니다.”

전남 함평이 고향. 중학교 때 복싱을 했다. 먼 훗날 세계 챔피언을 꿈꾸며 열심히 운동을 했다. 어려서부터 남한테 지고는 못사는 성격으로 권투가 체질에 딱 맞았다. 한번은 양쪽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하고 붙어서 쉬지 않고 23분을 뛰어 본 적이 있다. 1라운드 3분씩 잡아도 무려 8라운드를 뛴 무모한 게임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승패를 가리지 못해 결국 무승부. 

복싱으로 인생을 걸어보려고 서울로 올라왔다. 중학교 마치고 서울에 와서 먹고 잘 곳을 찾다보니 바로 이곳 경마장이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일하면서 도장에 나가 권투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런데 경마장에 와보니 기마수(관리사) 선배들이 이미 복싱체육관에 나가고 있었다. 상황이 그러니 새까만 후배였던 그는 경마장에서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운동을 접었다. 당시 어린 나이에 복싱을 못해서 실망이 컸다. 기마수로 근무를 계속한 그는 69년 12월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 후 경마장에 재입사하였다가 나와서 74년에 육군사관학교 군마대로 들어갔다.

거기서 생도들이 타는 말을 관리했다. 역시 마필 관리사. 79년에 퇴사하여 다시 뚝섬경마장에 들어갔다. 세 번째 다시 들어간 것이다. 전두환 정권 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다시 그만두었다가 81년 1월5일 재입사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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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연을 안고 그는 한 회사에 무려 4번씩이나 재입사하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주인공이 되었다.

50대 후반에 노조위원장을 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젊게 산다는 증거. 이 위원장은 마필관리사경력 수십년의 경험을 살려 조합원들이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게 해줘야 되지 않겠나 싶어서 자발적 출마를 했다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1, 2대 노조부위원장을 지낸 그는 3, 4대 위원장에 출마하였다가 연거푸 떨어지고 나서 5대에 다시 도전하여 당선된 2전3기의 주인공이다.

말(馬)을 다룬다는 것은 말(言)처럼 쉽지가 않다. 산재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많다. 2002년 산재사고 전국 1위 사업장이 바로 마필관리사들이 일하는 이곳이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근무하는 곳은 마사회 유관단체인 과천 서울경마장. 서울 경마장 관리사 조합원은 467명이다. 다른 사업장과 달리 전 직원이 노조원이라고 설명한다. 제주 경마장까지 합치면 노조원은 550여명.

그는 66년부터 지금까지 근무한 장소와 부서 명칭은 달랐지만 하는 일은 변함없이 마필관리사로 외길을 걸어왔다. 햇수로 치면 38년째 계속 해오고 있는 셈이다. 일한 세월이 긴만큼 말에 대해서는 할말이 무궁무진하다. 말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세상이 아무리 첨단을 달리는 인공위성시대라고 하지만 우리가 예상을 못 잡는 것은 경마라고 그는 생각한다. 사람과 말과 날씨와 컨디션의 변수가 워낙 무궁무진해서 첨단과학으로도 예측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예측이 힘든 것은 역시 사람과 말.

그는 말과 친하다. 자식과는 안하지만 말과는 뽀뽀를 할 정도로 정이 듬뿍 들었다.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말이 하는 말을 그는 알아듣는다. 표정, 특히 눈동자를 보면 다 읽어진다. 

그가 관리하던 경주마 중에 ‘장구봉’이라는 말이 있었다. 마방에 그가 들어가면 발자국 소리만 듣고 나올 정도로 친해진 말이다.
 
그가 말을 만져주면 장구봉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뚝섬에서 관리하다 이곳 과천경마장에 데리고 와서 96년까지 관리하던 말인데 한참 세월이 지난 아직도 그는 장구봉을 잊지 못한다.

관리사는 평관리사와 조교승인 관리사 그리고 조교보 관리사가 있다. 직급은 달라도 모든 업무가 말 관리하고 조교시키는 일이다 보니 많이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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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전에는 다치면 산재 말고도 경마시행처(마사회)에서 위로보상금을 지급했는데 IMF  이후로는 아예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조합 자체로 회비를 걷어 위로차원에서 보상을 해주고 있다. 이를테면 제살 깎아먹기 식 보상이다.

워낙 거친 말을 다루다 보니 부상을 당해도 허리를 많이 다친다.
 
집으로 치면 대들보나 마찬가지인 허리를 다치니까 그 후유증이 평생을 간다. 나은 후에 다시 말을 타면 재발하기 일쑤다.
 
산재를 당해도 근로복지공단에서 나오는 산재보상 외에 시행처나 조교사협회 등에서는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마디로 다친 사람만 억울하다는 것이다. 산재를 입고도 순환보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 말 관리를 하기 힘들면 장애를 입고 난 이후에도 업무가 가능한 부서로 보직을 순환시켜 줘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행처에서 해결해 주어야 할 문제라고 그는 지적한다.

산재를 입어 그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업무를 할 수 없다면 명예퇴직을 해가지고 철도청 홍익회처럼 보상차원에서 챙겨주면 좋을 텐데….
 
산재를 입은 조합원에 한해서 순환보직이 안되고 명예퇴직이 안 된다면 장애고용촉진법에 의해서 업무량을 줄여주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그는 말한다. 예를 들어 마필 관리두수를 줄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도 서울 경마장은 형편이 좀 나은 편이다. 노동조합이 있고 협회고용이기 때문에 그래도 신분은 보장이 된다. 그러나 부산이나 제주경마장은 조교사 개인고용이기 때문에 이것마저도 대책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서울은 협회 고용인데 다른 경마장은 조교사 개인고용이기 때문에 마필관리사들의 신분이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다는 것이다.

조교사가 정년퇴직할 수도 있고 사고나 질병을 입어 업무를 못할 수도 있는데, 이럴 때 관리사의 신분은 보장이 안 된다. 내 직장이 없어지니 자동해고나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서울경마장이나 아니면 시행처가 고용을 하는 식으로 고용체계를 바꿔야 해결될 것이다.

마필관리사 사업장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조합원이 있기 때문에 이곳 노조위원장이 되려면 나이와 경륜이 필요하다고 조합원들은 말한다.
 
학력도 무학에서부터 박사과정까지 다양하고 또한 나이 먹은 조교사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젊은 패기만 가지고는 절대로 집단을 이끌어갈 수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 위원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이 내건 공약은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사업장을 만드는 것. 그들은 그동안 축산업이라는 미명아래 장시간 노동을 해왔다고 한다.
 
축산업에서 이곳은 동물사육장 하루 8시간 근무 제외 사업장이었다. 그 조항 때문에 혹사를 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지금은 개선되어 8시간 근무할 수 있는 근로기준법이 적용 되었다.

이제는 이곳도 한국 표준산업 분류표에서 경기 및 오락 서비스업으로 분류되었다. 거기에 맞춰서 부득이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근로기준법 52조에 의해서 주 12시간 이상을 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따라서 휴일근로 및 야간 근로 또는 시간외 근로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미흡하다.

주 5일제 40시간까지 이루어지면 더욱 좋겠지만…. 이 위원장은 앞으로 계속 임기동안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한다.

가족으로는 아내와 1남1녀가 있다. 큰딸은 고등학교 교사로 있고 아들은 원광대 생명과학과 졸업반이다.

경마일인 주말은 정상근무. 그래서 주말은 꼼짝 못 한다. 대신 화요일이 쉬는 날이다. 낚시를 좋아하지만 요즘은 거의 가지 않는다.

이 위원장 역시 수십년을 이곳에서 일해 오다 보니 말에서 떨어지거나 받히고 물리는 등 부상으로 손가락에서 시작해서 발가락 어깨 등 안 다친 곳이 없다.

말에게 물린 적도 많다. 밟히고 채이고 떨어지기가 부지기수다. 그래도 말이 밉지가 않다. 숫말들이 좋아서 물고 장난치고 까부는데 그것도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어떤 관리사는 말이 까부느냐고 코를 물어서 코가 떨어져 나가고 또 어떤 관리사는 말에 물려서 귀가 떨어져 나간 적도 있다. 이 정도면 물린 사람에게는 장난이 아니라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말이 좋다고 한다.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여유가 있다면 말과 평생 같이 하는 생활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 좋단다.

옛날에 비해서는 근로여건이 많이 좋아졌다는 이 위원장. 금요일에도 경마를 했던 뚝섬 시절에는 목요일 낮에 들어와서 경마가 끝나는 일요일까지 3일동안 경마장에 묶여 있었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냈기에 오늘의 그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그것을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바로 그가 할 몫이다.

그는 조합원들이 많이 도와주고 이해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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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03년 06월09일 17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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