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81) 일본에 우뚝선 한국인 여의사 김정아 (1)

[클릭이사람] (81) 일본에 우뚝선 한국인 여의사 김정아 (1)

동해바다 건너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에 가면 한국인 여의사 김정아가 있다.

조국이 해방 되던해 일본에서 태어난 교포 2세로 몸은 비록 일본에 살고 있지만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여자. 진료시간에 쫓기지 않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사라는 입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일본에 한국바람을 몰고 다닌다. 훈훈한 인술을 베풀며 일본 의료계에 자신의 입지를 당당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일 노인시설 간세이보(看淸坊) ·후몽인(普門院) 진료소 화보]


일본 도치기현 마시코에서 노인보건요양시설 간세이보(看淸坊)와 후몽인(普門院)진료소를 운영하는 원장님.

딸을 보면 어머니를 알수 있다는 우리말이 있다. 그만큼 어머니의 사고방식이나 일거수 일투족이 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어머니에 그딸. 김원장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자랐다.

일본에 살면서 세딸을 의사로 키우고 또 한명을 음악가로 키운 어머니. 큰딸인 김원장은 그런 어머니가 늘 자랑스럽다.

김원장 집안은 유난히 의사가 많다. 의사집안. 자신은 물론이고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두동생까지 모두 의사다. 김원장의 딸도 의대 5학년으로 예비의사.

어머니는 딸들을 의사로 키우면 평생 공부할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여자라도 튼튼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평생 기안죽고 떳떳하게 세상을 살아갈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딸들을 키웠다. 생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자식들이 가야할 길과 목표는 같았다고나 할까? 당장 눈앞의 현실보다 멀리 앞을 내다보는 부모의 그런 교육관이 지금의 자식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음악을 유난히 좋아했던 어머니. 그래서 어머니는 막내딸 하나만은 음대로 보냈다. 그런 막내딸이 지금은 음악가로써 집안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어머니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막내딸이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줘 집안 분위기를 밝고 환하게 만들어 주곤 했다.

김원장이 운영하는 노인보건시설과 진료소는 도쿄에서 120km쯤 떨어져 있다. 도쿄에서 병원이 있는 마시코까지 자동차로 약 3시간 걸린다. 고속열차 신간센이 지나가는 도시 우쯔노미아에서 차를 몰고 넉넉잡아 1시간이면 올수 있다. 도쿄에서 우쯔노미아까지는 신간센으로 50여분 거리.

일본에서 20번째 순례사찰인 西明寺 기슭에 위치해 있어서 경치가 좋다. 도자기촌으로 유명한 마시코의 깊은 산을 끼고 있다. 얼핏 보기로는 깊은 산속에 의료시설이 들어 있어 환자들이 별로 찾아올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현지에서 살펴보면 의사가 최선을 다해 환자를 아껴주는 만큼 환자들도 의사를 믿고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규모도 작고 교통도 불편하지만 도쿄에 까지 알려질 정도로 매스컴도 많이 탔다. NHK방송 요미우리 신문 등에서 직접 찾아와 구석구석 취재를 해서 한국인 여의사가 펼치는 훈훈한 인술을 특집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제 김원장은 일본에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을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비결이 뭘까? 10월 첫주 2박3일간 머물면서 주의깊게 지켜본 결과 알게 되었다. 육신이 불편하거나 병든 노인을 부모처럼 떠받들고 공경하는 아름다운 정신이 일본인 환자와 보호자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을…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주변사람들은 언제 어느때 와서 보더라도 하루 한날같이 변함없는 친절진료가 돋보이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환자도 보호자도 이웃사람들도 하나같이 입이 닳도록 김원장을 칭찬한다.

간세이보의 모체가 되는 후몽인 진료소는 호스피스 시설까지 갖추고 철저한 의약분업을 실시하는 병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바늘가는 곳에 실가는 부창부수. 김원장 부부는 그런 사람이다. 일본 최고의 국립 동경암센터에서 부부가 함께 10여년간 의사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다보니 암에 관한한 누구못지 않은 전문가가 되었다.

그런 뛰어난 실력을 가진 그가 무슨이유로 잘나가는 동경암센터를 때려치우고 왜 이런 시골구석까지 내려와 의료시설을 차리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대학시절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노인환자들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나중에 의사가 되면 심신이 불편한 노인들을 전문으로 간호하는 시설을 차리겠다고 그때 결심했어요"

부모에 대한 효성이 깊은 김원장. 70이 넘은 친정부모님을 바로 옆에 모셔놓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 타국에서 행여라도 외로움을 타실까봐 세심하게 신경쓰는 저런 효심이라면 고국에서도 단연 으뜸 효부상감. 예절 바르고 어른을 공손히 모시는 일이라면 일본에서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일본인 교장선생님 5백여명 앞에서 예절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런 몸에 밴 효성이 노인환자들에게 손발이 되어주고 정성을 다하는 보살핌으로 이어진 것은 당연한 일. 교포 3세인 김원장의 딸도 엄마를 닮아서인지 학교 페스티벌 때 한복을 입고 나올 정도로 뿌리의식이 강하다.

일본에 살면서도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김원장. 그가 운영하는 노인요양시설 주변에는 온통 무궁화 꽃이다. 5년전 처음 건물을 세울때부터 여기저기 심어놓은 것이 자라서 지금은 이렇게 무궁화 꽃 천지가 되었다. 조국을 사랑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있는 꽃밭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피고 지는 우리꽃을 일본에 와서 보니 기분이 새삼스럽고 웬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다. 감나무도 눈에 띄고 손톱에 물들이는 봉숭아도 보인다. 그의 병원에 가면 주변에 한국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보기드문 미인의사. 5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군살하나 없어 보이고 건강미가 철철 넘쳐 흐른다. 항상 웃음꽃이 피는 스마일 스타일.

환자들과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김원장을 만나는 것 만으로도 노인들은 기분 좋은 엔돌핀이 넘쳐 흐르는 표정이다.

박힌 돌과 굴러온 돌. 일본이라는 박힌 돌 틈에 비집고 들어가 한국인이 당당하게 자신의 입지를 구축해 나간다는 것은 말이 쉽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원장은 해냈다. 해내고야 말았다. 그것도 연약한 여자 몸으로… 그가 베푸는 인술을 무기로 일본인들의 마음을 녹이고 현실의 장벽을 훌쩍 뛰어 넘었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타국살이 50여년 애환은 몇날 며칠을 계속해서 이야기 해도 다 털어 놓을수가 없다. 어머니는 마음고생이 심했던 지난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지문 날인이 있을때만 해도 서러워서 견딜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국인이라는 내색을 잘 하지 않았던 적도 있어요.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점점 바뀌게 되더라구요. 큰 딸 덕분이지요"

어머니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당당하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큰딸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노인보건시설 간세이보에는 병상이 60개. 규모로 치면 아주 작은 편이지만 시설로 치면 최고 수준. 어디를 둘러보아도 턱이 없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다.

◇사진은 노인보건요양시설 간세이보의 식당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포즈를 취한 김정아원장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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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people365@korea.com>

2000/10/10 10: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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