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엿보기] (579) 친구라는 이름으로

[세상엿보기] (579) 친구라는 이름으로

험난한 세상에 이리저리 부대끼고 시달리며 아등바등 살다보니 65세를 넘어 어느덧 인생 후반전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턱없이 짧은 이 시점에서 지난 세월을 조용히 되돌아본다.

어머니 뱃속에서 한 생명으로 잉태하여 인간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지구별 세상에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고 위아래가 있지만 죽음은 순서가 없음을 늙어가면서 실감하고 있다.

고향 친구들만 해도 그렇다.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 자락에서 태어나 전깃불도 안 들어오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1963년 코흘리개 1학년으로 만나 6년을 함께한 죽마고우 친구들이 이제는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리고 얼굴은 잔주름이 늘어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 따로 현실 따로 놀고 있다. 몸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데 마음은 옛날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어쩌다가 고향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나이를 잊고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가 없다. ‘100세 장수시대’라는 말을 비웃듯이 고향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가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을 다 합쳐도 채 100명이 안 되건만 벌써 10명 넘게 하늘의 별이 되었다. 전체의 10%가 넘는 숫자다.

누군가는 남편을 잃었고 누군가는 아내를 잃었다. 누군가는 아내가 아프고 누군가는 남편이 아프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나쁜 소식이 더 빨리 더 자주 온다는 사실이다.

2024년 11월19일 오후 서울 상계동 백병원 장례식장에 들렀다. 남편상을 당한 친구를 조문하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큰 슬픔에 빠진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눈시울이 불거진 상주(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도 친구의 주변에는 따스한 온기가 흘렀다. 비보를 접한 고향 벗들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빈소를 찾았기 때문이다.

부산, 대전에 살고 있는 친구들도 ktx로 와서 상주의 손을 잡아주었다. 또 한 친구는 양쪽 무릎 수술을 받아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먼 길을 왔다.

개인택시를 하는 두 친구도 생업을 포기하고 자리를 함께 했다. 슬픔을 함께 나눌 이런 친구들이 있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친구가 아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금도 병원을 들락거리는 친구도 있고, 병상에서 누워 있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도 그런 친구들을 위해 실질적으로 해줄 것이 없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저 기도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게 고작이다.

그래도 내게 친구가 있어서 좋다. 나의 소중한 고향 친구들아! 우리 아프지 말자. 나도 너도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즐기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김명수/ 인물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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