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문에 비친 김명수 인터뷰 전문기자

인물뉴스 | 입력 : 2013/12/16 [12:50]

 
대한민국 대표 인터뷰 전문기자 김명수 씨
 
최고의 소통 노하우는 인터뷰라고 외치면서 이 시대의 롤모델이 될 만한 각계 인물 1000명 이상을 심층 인터뷰한 김명수 인터뷰 전문기자를 만나봤다. 제1회 대한민국 기록문화대상을 수상한 인터뷰 달인이자 11권의 책을 집필한 중견 작가로 현재 인터뷰 신문 ‘인물뉴스닷컴’을 운영하면서 인터뷰와 글쓰기에 푹 빠져 살고 있다. 


그의 인터뷰 대상에는 성역이 없다. 잘나가는 1%보다는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99%에 더 집중하며 소나 말, 나무, 돌멩이 심지어는 죽은 영혼에까지 말을 건다.

뉴시스 전국부 편집위원을 겸하고 있는 그는 실미도 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경향닷컴 편집국장 시절 1년에 걸쳐 연재했던 실미도 ‘684 주석궁 폭파부대’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국내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실미도’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인터뷰 고수이자 중견 언론인임에도 정작 인터뷰는 신문기자만 한다는 생각을 전면 부인하며 ‘인터뷰는 삶’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기자는 살면서 인터뷰라고는 우리신문에 입사한 후, 딱 두 번 해본 게 전부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무작정 접촉을 해, ‘인터뷰 부탁합니다!’라고 겁 없이 도전하는 신입 기자의 패기를 곱게 보셨는지 모두 수락해주셨다. 천행이다. 하지만 이번엔 ‘인터뷰 전문기자’를 인터뷰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불통의 시대, 무엇보다 설득과 소통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떠올랐으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를 인터뷰 하기 위해선 우선 편집국장님을 설득해야 했고, 그다음으로 김명수 씨를 설득해야 했다. 이것부터 ‘인터뷰의 시작’이었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그는 쉽게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것 같았다. 주고받은 문자 안에서도 깐깐함이 묻어났다. ‘무슨 내용으로 하려는지 알고 싶네요’,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나요?’, ‘사진 찍나요?’, ‘인물뉴스닷컴하고 인터뷰 잘 만드는 사람 두 개는 꼭 챙겨보고 와요’ 등 공자 앞에서 문자 쓰려던 시도 자체를 후회하게 하였다. 김명수 씨를 만나러 충무로로 향하는 걸음엔 왠지 기운이 빠졌다. 김명수 씨와의 첫 만남, 기자에게 건넨 첫마디는 “구내식당으로 가지.”였다.

2011년 ‘제1회 기록문화대상’을 받은 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소탈한 모습이었다. 칼과 같은 말로 상대를 찌르며 일필휘지하는 분에 대한 편견이 강했던 탓일까. 팽팽했던 긴장감은 이내 누그러지고 주객전도 되어 기자가 인터뷰이가 되어 있었다. 묻지도 않았던 학교생활부터, 시골에 계신 부모님까지 술술 털어놓았다. 그는 인터뷰의 기본은 가장 낮은 자세로 상대를 대하고 전문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그가 학창시절 줄곧 반장만 도맡아 하며 앞자리에 앉아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께 질문하던 인물이었을까 싶었다.

“인생에 반전이란 게 없으면 참 재미없어요. 전 자폐적인 성향이 강했습니다. 남 앞에서 얘기 한 번 해본 적도 없고, 친한 친구 두세 명 빼놓고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글짓기 경시대회 나가본 적도 없고, 다른 사람과 말하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지금은 180도 바뀌었고요. 사람은 자기 하기에 따라 변신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색안경을 벗고 보니, 찌를 것 같은 차가운 눈빛이 전에는 남과 눈도 못 마주치던 수줍음 많은 눈빛이었고, 강직하고 깐깐해 보인 체구는 오히려 왜소해 보였다.

“1983년에 대전일보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편집기자와 취재기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취재가 두렵고 겁나 편집기자를 자원할 정도로 내성적이었습니다. 경향신문으로 가서도 편집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다른 부서로 방출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10여년 동안 몸담아온 편집부를 떠나는 그때 심정이 울타리가 허물어진 기분이었어요. 밖에선 말만 신문기자라고 했지, 글 한 줄도 써본 적 없는 내근 기자였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그 사건이 내 인생에 전화 위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때마침 전국에 닷컴 바람이 강하게 불어닥쳤고 경향닷컴 뉴스팀장으로 발령받은 이후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독자투고에 글을 올렸습니다. 테마를 잡아 꾸준히 글을 올리니까 여기저기서 반응이 왔습니다. 당시 핫 이슈로 떠오르는 소재를 놓치지 않고 신속하게 시리즈로 올릴 때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뉴질랜드, 호주, 영국 등 해외 교포들의 댓글이 폭발적이었습니다. 다음 연재는 언제냐부터 해서…….”

신문사에 들어와 내근 기자 생활 10년만에 당한 구조조정을 계기로 그는 늘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왔던 모습을 그렇게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하루는 닷컴 사장이 편집국장이던 그에게 인터뷰를 해오라고 취재지시를 내렸다. 인생이란 어느 순간 닥친 작은 사건 하나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오는 것 같다. 겁을 잔뜩 집어먹고 한 첫 인터뷰가 그의 나이 44살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 인터뷰로 인해 그의 인생이 180도로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김명수 기자 수고했어요. 20년을 취재기자로 기사만 쓴 내 글보다 당신이 처음 쓴 인터뷰기사가 훨신 좋아요. 앞으로 김명수 기자는 다른 일 안 해도 좋으니 인터뷰 계속 해요”

사장의 그 칭찬 한마디에 날아 올랐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고 인터뷰에 푹 빠져 전국을 쳇바퀴처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기사를 쏟아냈다. 그가 쓴 인터뷰 기사가 올라오기가 무섭게 방송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속 주인공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자신조차 몰랐던 숨겨진 재능의 놀라운 재발견이었다. 그렇다면 인터뷰 기술은 타고난 것일까, 하면서 느는 것일까?

“인터뷰 잘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처음부터 인터뷰를 잘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라도 노력하면 인터뷰 고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잘하는 최고의 비결은 경청, 상대방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14년 동안 1000명을 인터뷰했으면 4일꼴로 한 명을 만난 셈이다. 그 길고 긴 세월 동안 말로 다 못할 많은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실미도 바다에 빠져서 5시간 표류했던 적이 있고, 일본에 가서는 목욕탕 알몸 인터뷰도 했고, 부산 가덕도에 가선 발목이 절단될 뻔도 했고, 협박도 많이 당했어요. ‘당신 모가지가 몇 개냐’부터 해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면서도 인터뷰에 대한 열정은 멈출 수 없었다. 그의 인터뷰이는 하나같이 1%가 아닌 99%였다. 특별한 사람이 아닌,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마주쳤던 그네들이다. 그들을 인터뷰하는 이유는 사회를 구성하는 톱니바퀴는 99%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각도로 보면 그들이 대세이며, 아웃사이더가 아닌 주인공이라고 했다. 노숙자, 청소부, 목욕탕, 농부, 막노동, 택배 아저씨, 때밀이 등 그가 한 인터뷰이의 직업군은 다양했다. 그리고 인터뷰할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때밀이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도 한때는 돈을 잘 벌었어요. 하루아침에 IMF로 피해를 본 거예요. 창피하다고 이름을 싣지 말라고 하기에 설득했어요. 당신이 가족 생계를 다 책임지고 있고, 숭고한 노동이다, 자랑스럽다고 말이죠. 또 때밀이가 아니라 다른 이름 ‘목욕관리사’로 쓰겠다고 하니까 그러라고 하더군요. 음지에 있는 직업을 양지로 끌어내고, 그 분야의 롤모델을 재밌고 흥미 있게 만드는 거죠.”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선 웃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 냄새 나는 사람’ 만나기를 즐기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세상의 주인공은 사람’이라며, 주인공을 취재하는데 왜 재미가 없겠냐고 반문했다. "삼성이 주인공이 아니라 사람 이건희가 주인공이고, 그 회사를 움직이는 노동자가 주인공"이라며 “나머지는 곁가지”라고 말했다.

“취재 인터뷰만 인터뷰가 아닙니다. 보통 인터뷰 하면 기자나 작가 등 전문가들이 직업적으로 하는 글쓰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자기표현을 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자체 또한 넓은 의미에서 인터뷰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불장군이 아닌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는 누구라도 인터뷰를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각자 처한 상황과 하는 일이 달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터뷰를 잘해야 경쟁력이 강해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지구 상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말입니다. 입사시험이나 입학시험에서 필기시험을 통과했더라도 최종 합격 여부는 면접 인터뷰에 달렸습니다. 미국 여행 비자를 받으려 해도 인터뷰를 거쳐야 함은 물론이고 선남선녀가 맞선을 보더라도 상대방 부모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상견례를 겸한 첫 대면에서 인터뷰에 해당하는 면접을 잘해야 합니다. 세일즈맨이 잠재 고객을 만나 자사 물건을 팔더라도 인터뷰를 잘해야 성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장에서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프레젠테이션(PT)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서 주최하는 투자설명회로 회사의 흥망성쇠가 달린 사업자금을 끌어모으는 지름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인터뷰를 잘하는 겁니다. 인터뷰를 잘하고 글쓰기에 능하며 스피치까지 받쳐주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는 인터뷰에 대한 정의를 간결하고 명쾌하게 내려주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게 아니라 인간사를 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천직은 인터뷰어이지만 부업을 항상 했다고 한다.

“생명력이 넘치고 펄펄 살아 숨 쉬는 글을 쓰기 위해서 거친 일을 자청하며 삶의 체험을 꾸준히 병행해오고 있습니다. 노숙자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 훨씬 이전에 일찌감치 노숙자 대열에 끼어서 홈리스로 일주일 체험도 해봤습니다. 그런가 하면 식당 접시 닦기 6개월, 막노동 2개월, 엑스트라 2개월, 택배 1주일, 아파트 경비 등 몸으로 하는 일에 기꺼이 뛰어들어 고달픈 현실의 쓴 맛을 진하게 체험했습니다. 젊었을 때 잠깐 겪은 왕년의 경험이 아니라 50대 중반의 지금 현재도 몸으로 때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파트 경비를 2011년 10월까지 3년 넘게 했습니다. 그것도 대충대충 설렁 설렁이 아닙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해를 마감하는 2008년 연말에는 제가 속한 A조 전체 경비 근무자 25명을 대표하는 모범 사원으로 뽑혀 주민들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습니다. 그런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인터뷰 전문기자로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체험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 들어가 그들의 내면의 삶을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어서입니다.”

이쯤에서 뜬금없는 질문이 생각났다. 삶을 등지는 이들의 마음 한켠엔 소통이 안 된 점도 있지 않나 싶었다. 자살하려는 이를 만나면 어떻게 설득하는 게 좋을지 물었다.

“당신 정말 죽기로 작정했으면 제가 굳이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 한마디는 당신께 꼭 하고 싶습니다.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마찬가지일테니까 기왕 죽을 거 속는 셈치고 오늘 하루만 나와 같이 있다가 내일 죽으면 안 되겠습니까. 이유는 당신이 죽으려고 하는 이유가 뭔지 꼭 듣고 싶습니다. 하루면 충분합니다. 죽는 이유를 털어놓지 않고 그냥 죽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제가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을 들어줄 테니까 오늘 하루만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하루의 시간을 벌고 그러면 하루만에 죽으려는 마음을 돌려놓아야지요.”

늘 인터뷰어로만 살다가 인터뷰이가 된 소회를 묻자, 그는 마음이 편하다며 설핏 웃었다. 글 쓰는 것에 대한 부담도 크고, 양질의 기사를 써야 하기에 대화 중 상대의 태도, 언어, 몸짓을 다 캐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하기 전, 철저한 사전조사를 하고, 음성녹음은 피한다고 한다. 대신 당시의 분위기, 습관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자기 자신을 축복의 존재라고 인식하고 주변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의 계획은 “연필 잡을 힘만 있다면 끝까지 인터뷰를 하는 것”이라며 말을 마쳤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 노인은 ‘불타고 있는 도서관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힘없는 초로의 노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걸어온 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뜻일 거다. 사람 자체만으로도 ‘드라마’일진대 1000여 명의 가치 있고 깊이 있는 교제를 한 그는 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2013년 11월19일
글|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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