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522) 서커스같은 인생을 살아온 동춘서커스 박세환 단장

김명수기자 | 입력 : 2013/02/02 [07:16]
[클릭이사람] (522) 서커스같은 인생을 살아온 동춘서커스 박세환 단장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에 가면 아련한 향수와 멋진 추억을 선물하는 88년 전통의 동춘 서커스를 구경할 수 있다.

▲     © 피플코리아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춘서커스단이 대부도에 천막극장을 치고 2년째 상설 공연을 해오고 있다. 온 국민이 쉬는 민족 최대 명절 설날에도 공연을 한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정상으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해온 동춘서커스의 산 증인 박세환(69) 단장을 만났다.

“하루는 한 여성 관람객이 서커스를 보고나서 저한테 고맙다고 해요. 시골에서 올라오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어서 동춘 서커스를 관람시켜 드렸더니 너무 너무 재밌어 하셨다는 거예요.”

숱한 해체위기를 딛고 자부심 하나로 명맥을 지켜온 동춘서커스 박세환 단장의 인생 자체가 서커스였다. 무대 위에서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온 세월이 자그마치 50년이다.

“어렵고 힘든 시절 국민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던 동춘서커스가 사라지면 우리나라에 서커스가 완전히 없어집니다.”

동춘서커스는 1925년 국내 곡예단 1호로 창단한 이후 88년째 연중무휴 공연을 펼쳐온 국내 유일의 전국 순회 서커스단이다. 전성기 때는 우리나라에 동춘 서커스를 포함해서 우리나라에 15개 서커스단이 있었다.

TV가 귀하던 시절 정은희, 허장강, 서영춘, 배삼룡, 이주일, 이봉조, 남철, 남성남 등 수백명의 스타를 배출한 스타 등용문이었다.

당시 서커스는 쇼, 연극, 국악, 서커스, 마술, 풍물을 모두 보여주는 버라이어티 공연이었다. 1960~1970년대 동춘 소속 단원들만 250명이 넘을 정도로 서커스가 호황을 누렸으나 TV가 보급되고 드라마와 영화에 자리를 내주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세파에 밀려서 하나 둘 자취를 감추면서 이제 우리나라에 딱 하나 동춘 서커스단만 남아있다. “서커스는 눈속임 없는 스포츠예술이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문화예술 장르입니다. 춤, 노래까지 K팝 한류로 세계에 나가있는 마당에 서커스만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중 예술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서커스가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     ©피플코리아
박 단장은 1962년 경북 경주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19살의 나이로 동춘 서커스 단원이 된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없어지면 한국의 서커스도 사라진다는 일념으로 버텨왔다.

1978년 동춘서커스가 매물로 나오자 직접 인수하여 운영에서 총감독과 배우, 사회까지 1인다역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서커스단을 이끌어 오고 있다.

“연극, 국악, 비보이, 전통음악 등 모든 예술에 수천억씩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서커스는 전혀 지원을 못 받고 있습니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동춘은 2012년 3월 15일부터 5월말까지 서울시내 55개 복지관 취약계층 각 150명씩 엄선해서 7000명의 ‘어르신 문안나들이’ 자선 공연을 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사회적 기업으로 사회기여도 많이 하고 재능나눔 공연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박 단장의 설명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관광 산업화에 가장 많이 활용하는 문화예술이 바로 서커스다. 중국 베이징이나 미국 라스베이거스, 심지어 북한 평양까지 전 세계적으로 상설 서커스 극장이 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상설 공연장이 없다.

“내가 연극배우, 가수, 코미디언 모두 해봤지만 가장 힘있는 대중예술은 서커스밖에 없어요. 남녀노소 3대가 다 즐기니까. 인터뷰를 하던 전날에도 대부도 천막극장 매회 공연에 1000명씩 왔어요.”

박세환 단장은 “관계당국에 몇 번이나 찾아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서커스극장 건설 제안을 해봤지만 떼(무리)가 없다고 묵살했다”면서 혀를 찼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서커스를 무시하는 풍토를 개탄한다.

“이제는 서커스라는 장르가 죽느냐 사느냐 사활이 걸렸어요. 내가 각계 요소에 서커스를 살릴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진정을 넣었더니 그 모든 서류가 문화관광부 말단 공무원한테 넘어가 있어요. 한마디로 기가 찰 일이죠”

동춘서커스단은 2009년 신종플루 여파로 관객이 급감하여 천문학적 부채를 안고 해체위기에 직면했지만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 국민의 성원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9년 12월 예비사회적기업에 선정된 동춘은 같은 달 19일부터 김포 실내체육관을 빌려 한달 동안 공연했다. “오픈 첫날부터 대박이 났어요. 서커스단의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입장료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관객들이 몰려왔어요. 거기서 돈을 벌었죠.”

2010년 경기도 수원으로 무대를 옮겨 5개월간 공연했다. 서커스를 보려는 관객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시민들이 동춘 서커스단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와서 구경하고 재밌으니까 또 다른 관객을 데리고 오고…. 그 덕분에 부채도 갚고 다시 일어섰죠.”

▲     ©피플코리아
서커스가 옛날에는 곡예였다면 지금은 서커스 안에 예술과 테마가 있고 스토리가 있다. 견우직녀 등 우리나라 전통 문화와 음악을 접목시킨 서커스로 진화했다.

“중국, 러시아 서커스 잘한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은 동춘 서커스를 안 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술 공연으로 우리 음악 틀어놓고 100분을 하잖아요. 서양은 50분밖에 안하는데…”

동춘 서커스는 공중곡예 등 12개 프로그램이 5~8분의 레퍼토리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무대 위에서 아슬아슬한 곡예가 벌어질 때마다 객석에서 탄성과 환호,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경기도 과천 마사회에서 1년 공연하고, 안산 대부도로 무대를 옮겨 해오고 있어요. 대부도 식당에서 칼국수 먹은 사람들은 입장료 반액 할인했더니 그게 대박 났어요. 대부도 상인도 좋아하고 서커스단도 잘돼서 1석2조죠.”

박 단장은 대부도에 365일 전천후 공연이 가능한 상설 서커스 관광극장, 아카데미, 박물관을 짓고, 서울시에 제안해서 구의동 취수장 리모델링으로 서커스관광극장을 추진하고 있다.

“동춘 서커스는 연중무휴 공연하는 단체입니다. 곡예사들이 3개월만 쉬면 살이 찌고 동작이 둔해서 못 해요. 적자 흑자 안 가리고 연중무휴 공연을 계속해야 해요. 요즘 같은 혹한에도 적자 내가면서 기름때고 계속 공연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대부도 서커스 공연장을 가려면 교통이 불편하다. 그래도 관객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서커스 공연이 재밌고 좋아서다.

“달랑 1만원 가지고 이렇게 좋은 공연을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교통이 나빠도 재밌으니까 불편을 감수하고 여기까지 와서 보는 거죠. 한번 구경한 관객이 또 다른 관객을 몰고 계속 오니까요.”

박 단장은 19살에 동춘서커스에 입단해서 22살 때 연극 주연, 서커스 사회, 코미디, 가수, 원맨쇼, 줄타기 등 만능 엔터테이너로 1인10역을 해왔다. 지금도 실내 대형 체육관이나 큰 공연은 그가 직접 진행하고 사회를 본다.

88년 역사의 동춘 서커스단이 그동안 펼쳐온 공연 횟수는 자그마치 8만회가 넘는다. 그가 단장을 맡아 단체를 이끈 30년 동안 하루에 2회 공연만 잡아도 연간 700회가 넘는다.

“위기 때마다 한 마음으로 도와준 국민들의 성원이 가장 기억이 납니다. 2003년 9월10일 전국을 강타한 태풍 매미로 광양에서 천막과 장비가 유실되어 20억 모두 날리고 완전히 빈손이었어요.”

▲     © 피플코리아
우선 단원들 허기진 배라도 채우려고 10월1일 진주에서 천막과 말목을 빌려 움막 극장을 만들어 공연 했다. 거기서 한 달 동안 하루 3회 공연 연속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그때 대단했어요. 동춘 서커스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시민 공감대가 형성되었죠. 거기서 번 돈으로 대부도에 현재 서커스 천막 기둥을 설치하고 기반을 만들었어요.”

동춘의 오늘이 있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위기 때마다 그렇게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으로 다시 일어섰다.

일본 도쿄, 오사카, 미국 뉴욕, LA 등 기획사에서 해외 초청 공연 제의를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알려야 하니까 무용수, 국악인들까지 데리고 가려면 수지타산이 안 맞아요. 그래서 자체 해외공연을 구상중입니다. 현장에 가서 직접 부딪쳐 흥행 대박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키워보려고 많이 시도해 봤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서커스단을 이끌어갈 박 단장의 후계자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운영을 잘해 돈을 많이 벌고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는 쪽으로 작전을 바꿨다. 서커스 하면 돈을 많이 벌고 인기도 끈다는 이미지를 풍기면 그때는 후계자 서로 하려고 나서지 않겠나 싶어 그렇게 되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농번기가 있고, 여름에는 덥고 태풍오고, 겨울에는 한파에 폭설로 공연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부산, 서울, 인천, 광주, 대구 이 정도는 상설극장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의 예를 들면 베이징에만 12개의 서커스 상설극장이 있어요. 그래도 대박입니다.”

신작로와 자전거, 초가집과 한복이 아스팔트와 자가용, 콘크리트와 양복을 대신하던 시절에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유랑하며 인기를 누렸던 환상의 서커스가 사라져가고 있다.

88년 전통 한국곡예의 자존심 동춘 박세환 단장은 서커스의 부활을 꿈꾸며 오늘도 향수 어린 전통 곡마단의 명맥을 끈질기게 이어오고 있다.

관객과 함께 웃고 울며 줄 하나에 의지해 하늘을 날고 아슬아슬 묘기들이 펼쳐지는 이 시대 마지막 서커스. 하루쯤 시간을 내어 추억을 선물해주는 동춘 서커스단을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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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2월02일 07시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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