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인터뷰] 대북사업 전문가 신용선 사장에 듣는다

김명수기자 | 입력 : 2005/07/19 [21:03]
[클릭인터뷰] 대북사업 전문가 다여무역 신용선 사장에 듣는다

남북한경협이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는 요즘 대북사업 전문가 신용선(辛龍善 ․ 46) (주)다여무역 사장을 만나 보았다. 신 사장은 철조망을 걷어내고 민족이 하나 되는 길은 남북사업외에 없다고 강조했다. 대북사업을 하면서 보람도 컸지만 예상 못한 어려움도 많았다는 그를 통하여 대북사업에 관한 전망과 문제점 및 그의 관심사를 문답식으로 들어 보았다.


언제부터 북한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우연인지 인연인지 모르지만, 북한에 관심을 처음 갖게 된 것은 1980년도로 돌아간다고 한다. 당시는 나라가 어수선하고 광주 5.18사태가 일어나고 복잡한 사회상황이었는데,대학 통일문제연구소에서 통일논문을 모집하였는데, 처음 [분단상황에 대한 극복 논리]라는 논문을 쓰면서 북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지금으로부터 25년쯤에 일이지만 이게 지금 와서 보면 북한사업을 하도록 한 일종에 텔리파시 였던 것 같다.


북한사업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느끼는가.

전망이라고 보기 보다는 숙명적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사업이다. 분단의 대치 그리고 철조망을 걷어내고 민족이 하나 되는 일은 남북사업이외에 길이 없다. 정치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접근단계는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선제조치로 용이하지 않다고 본다. 굶어 죽어가는 우리의 어린 후손을 방치하는 것은 아마도 지금의 기성세대에게 훗날 틀림없는 [죄]가 될 것이라 본다. 때문에 좋은 전망 나쁜 전망을 따지기 전에 북한사업은 이루어져야 하고 지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부도 그런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본다.


언제부터 대북사업을 하기 시작하였나.

대학 졸업 후 처음에는 동방그룹에 입사하였고 그룹종합기획조정실에 근무하였다. 이후 다국적기업인 Smith and Nephew Ltd라는 외국인 기업에 오랫동안 근무하였다. 마지막에 재미교포가 운영하는 기업에 [그룹기획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그룹 내 여러회사 중 가장 경영이 어려운 북한사업을 책임 맡아 하기로 결심하고 2001년도부터 대북사업에 뛰어들었다.


북한사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였는지 조금만 이야기 해달라.

처음에는 중국에 조선족대리인을 두고 하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선족대리인이 남한과 북한을 중개하지만, 양쪽의 기업 환경 중 어느 한곳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남측의 요구도 또는 북측의 요구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시간은 흐르고 일의 진척은 없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승인을 받고 본격적으로 북한사업에 뛰었다. 역시 경영자가 현지를 지휘하지 않는 [등거리경영]은 시간과 돈의 무제한 투자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북한과 접촉하면서 정확하게 그들의 의사를 판단하고 그에 따른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어떤 품목을 취급하였는가
 

처음에는 주로 “의류임가공”이 전부였다. 이후에 점차 확대되어 “가방. 가시오가피”도 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모래. 마그네사이트크랭카. 옥류관식당, 의류부자재공장설립”등등 접근을 하였고 일부는 계약까지 하였으나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의류. 가방. 가시오가피 정도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대북사업에서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기업가들이 북한에서 생산하여 오는 경우, 관세 및 부가세 면세혜택만 생각하는데 잘못 되는 경우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공장환경(설비상황, 노동력상황, 전기, 용수, 운송 등) 및 반입관련 서류 등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진행하여야 한다. 또한 중간상으로 역할을 하는 중국교포 나 해외교포들만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한국기업환경을 모르기에 아주 간단히 생각한다. 전문가(경험자)의 힘을 빌려야 한다. 중국에서 머무는 중개상들을 만나서 사업논의 해보면 아주 쉽게 이야기 한다. 마치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으로 말하지만, 실제 진행이 되면서 모든 게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이 한참 진행되다가 더욱 일이 크게 벌어지면 중국교포들이 책임감 없이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려 진퇴양란의 상황을 만드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간단하게 기억 나는 실수가 있으면 말해 달라.

돈 주고 실수로 얻는 경험은 끝도 없다. 가벼운 일이 크게 화를 만들 경우를 하나 말해보겠다. 중국 사무실에 중국교포지사장이 있었고, 또한 평소에 연락을 맡는 교포(조선족)여직원이 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아침에 출근을 하니, 난리가 났다. 평양에서 상대방으로 일하는 사장이 전화를 하여, 왜 이렇게 자기입장을 황당하게 만드는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내가 서울본사로 보내는 팩스를 이 여직원이 잘못하여 평양으로 보냈던 것이었다. 팩스기 한대를 놓고, 남북한 양쪽으로 통신으로 보내다 보니, 여직원이 실수를 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속에서 땀이 날 정도로 아찔했던 건이고 나중에 수습을 잘 했지만, 아주 혼이 난 케이스였다.


가장 사업에 힘들었고 하지만 보람과 성과를 가져온 경험은…

여러가지 있지만, 의류임가공은 매번 할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하였던 사업이었고, 사업에 주종으로 생각하고 하였기에 그 보다는 [가시오가피나무]를 반입하던 때의 기억이 가장 크다. 북에서 중국의 옛 고구려 수도(지안시)로 물품을 트럭으로 반입하여 [지안시보세창고영내]에 산더미처럼 부려놓고 그 지방 인력을 하루에 약 50여명을 동원하여 8월 복더위에 거의 한 달간 선별작업을 하여 국내에 반입한 것이 오래 두고 기억에 남는다. 지안시에서 단동으로 물품을 트럭운송하여 인천으로 반입하였는데 마치 군대작전이상으로 힘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남북사업도 엄연한 이익창출을 위한 사업이다. 그러나 이것은 민족사업이라 본다. 누군가는 해야 하고 어려운 길이지만 걸어야 할 길이라 본다. 때문에 지금도 고 정주영회장이 참으로 존경스러운 사업가라고 생각한다.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보다 더 많이 국가에서 도움을 주었으면 바라고, 현대 같이 큰 회사가 할 일도 있지만, 우리같이 자그마한 군소 사업가들이 또 할 일도 있다. 전 직장에서 [백의동포무역]이란 회사이름을 지은 적이 있다. 한반도에 백의민족이 철조망을 헐고 서로가 가슴을 대고 않고 춤을 추는 날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보다 훨씬 대북사업에 발전하는 모습으로 진행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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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17일 11시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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