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바람의 수필] (16) 술이 사람을 죽였다

(105)[바람의 수필] (16) 술이 사람을 죽였다


술이 사람을 잡은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마음이 찢어진다. 일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도대체 알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 그날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운명의 신이 예정된 길을 따라 잡아 끌어 당긴것은 아니었을까?

벌써 7년전의 일이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92년 1월 어느날이었다. 같이 일하던 후배동료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날을 잊을수가 없다. 벌써 며칠째 친구와 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둘이는 회사를 옮긴지 얼마 안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실망이 컸다.

친구는 회사가 정이 들지 않은데다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면서 그만 두겠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를 말렸다. 그래도 같이 들어왔는데 어지간하면 참고 힘이 들더라도 서로 위로하면서 다녀보자고 며칠째 설득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이회사에 들어오게 된 것은 친구때문이었다. 먼저 입사한 친구로부터 집으로 전화가 왔다.  야근할수 있는 유능하고 좋은 사람 있으면 추천을 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이미 야근에 이력이 나서 야근하는 직장에는 갈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이친구를 추천했다. 그런데 이친구 혼자서는 절대로 안가겠다는 것이었다. 가려면 나와 둘이 함께 가겠다는 것이다. 결국은 타협을 했다. 친구는 야근을 하는 조건으로 하고 나는 야근을 안하는 조건으로 둘이 함께 오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둘이는 함께 회사를 옮겼다. 친구따라 강남간 격이다. 친구를 추천하려다 함께 옮겨왔으니 둘이는 분신처럼 붙어다녔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옮겼는데 이친구가 한달도 안돼 회사를 그만두겠다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 말라고 잡고 싶었다.

그래서 며칠째 회유하고 설득하는 중이었다. 그날도 저녁때 일이 끝나고 술한잔 하기로 하였다. 추천해준 친구와 나와 그리고 회사를 그만 두겠다는 친구. 이렇게 3명이 모여 술이나 한잔 하면서 마지막으로 그만두지 말라고 설득하려고 만든 자리였다.

그런데 이 후배가 끼어들었다. 목적이 있는 약속자리에 술을 좋아하는 후배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우리는 찜찜했다. 그러나 오지말라고 말리지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 선배가 있으면 무조건 술을 사는 것이 회사풍토였다. 후배 때문에 우리들은 본론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멋적었다.

그날따라 불청객격인 술을 좋아하는 눈치없는 후배는 평소에 하던 대로 선배가 가니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따라온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솔직히 우리 3명끼리만  있고 싶었다.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솔직히 털어놓고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래서 1차를 하고 술자리를 옮겼다.

우리의 깊은 뜻을 알리 없는 이 눈치없는 후배가 또 따라왔다. 우리는 회사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했다. 그리고 술이나 마시기로 했다. 참 많이도 퍼마셨다. 서로 기분들이 찜찜하고 개운하지가 않아서 술로 분풀이하듯이 폭음을 했다.

그날따라 술이 잘 받았다.평소에는 소주 3잔이면 정량이던 내가 소주를 물마시듯이 들이켜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기분따라 주량도 달라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우리는 3차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웬걸. 이 후배는 또 따라붙었다. 정말 지독한 후배. 이제는 후배에게 정이 갔다.

마음이 여리고 술을 좋아하는 경상도 더벅머리 총각. 언제나 선배에게 친절하고 큰 덩치에 비해 순박하기만 한 경상도 사나이였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더라도 원없이 퍼마시고 보자. 정말 무섭게 술잔을 주고 받았다. 정신이 왔다갔다 흔들렸다. 꼭지가 돌았다. 시간이 꽤 흘러 새벽이 되었다. 이제는 집에 가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배가 먼저 나갔다. 그 다음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친구가 나갔다. 나와 남은 친구는 카운터에 가서 술값을 계산하고 거리로 나왔다. 둘이는 취할 대로 취해서 어깨동무를 하고 갈지자로 비틀거리면서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우리를 보고서는 택시가 그냥 지나가 버렸다.

갑자기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뻥하면서 자동차 바퀴 터지는 소리 같았다. 나와 친구는 여전히 술에 취해 비틀거렸다. 그런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우리가 서있던 길 건너편 쪽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우리 둘이는 동시에 그쪽을 바라보았다.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마 저쪽에 사고가 난 모양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그쪽엔 몰려든 차량들과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친구와 나도 다가갔다.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취했던 술이 확깨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길 한쪽에는 잠바가 떨어져 있었다. 친구와 나는 쓰러진 사람쪽으로 갔다.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쓰러진 사람의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괴성을 질러댔다. 앗, 경기야! 하면서 고래고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영문을 몰랐다. 친구가 하는 말이 아까 우리와 같이 술을 마셨던 그 후배라는 것이다. 친구의 그 말을 듣고 나도 그만 이성을 잃었다. 그토록 눈치 없이 따라와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그 후배가 바로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우리는 둘이 소리를 고개고래 지르고 미친 사람처럼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경기야 네가 가면 어떡하냐고 친구를 끌어안고 흔들어대며 고함을 쳤다. 솔직히 말해 나는 회사에 들어온지 며칠 되지 않아 후배의 얼굴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그러나 쉽사리 태워주려 하지 않았다. 택시가 섰다. 친구와 둘이서 쓰러져 있는 후배를 들어 태우려고 안간힘을 써봤으나 힘이 들었다. 80kg에 6척 장신의 거구를 왜소한 우리 둘이서 들다가 결국은 주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다급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일이 아니면 방관하는 사람들이 너무 야속했다. 할수없이 경찰에게 지원 요청을 했다. 우리는 경팔의 도움으로 후배 녀석을 들어 택시에 태웠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나와 친구는 후배를 붙잡고 이대로 가면 안 된다면서 몸을 흔들고 손으로 때리고 얼굴을 비벼댔다.

축 늘어진 후배의 몸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었다. 피로 범벅이 되어 말없이 누워있는 후배는 꼭 살아서 편안히 잠이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죽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단지 이대로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괴롭혔다.

5분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회사에 연락을 했다. 다음 순간부터는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그날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내정신이 아니었다. 이튿날 마누라 얘기를 들어보았다. 회사에서 야간 근무중이던 동료 직원이 달려나와 정신이 반쯤 나간 나를 택시에 태워 집에 보냈다는 것이다.

택시 안에서 옷이니 얼굴이니 손이니 피투성이인 나를 보고 택시 기사가 강도로 오인하여 멈칫거리며 경계하던 눈초리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마누라는 내가 온몸을 피로 물들인 채 횡설수설 정신병자처럼 혼자 지껄여대며 집에 들어오자마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 무섭기도 하고 미친 사람 같기도 하여 소름이 끼치도록 오싹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집에 오다가 강도를 당하거나 테러를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내가 입고 온 잠바를 대야에 담그니 핏물이 빨갛게 들 정도로 피가 범벅이 되었단다.

날이 밝아 병원엘 다시 갔다. 회사에서도 난리가 났다. 어젯저녁 무사히 근무를 마치고 멀쩡하게 퇴근한 사원이 난데없이 간밤에 사고를 당해 죽었다니 기가 막혔던 것이다. 그 이튿날이 되어서야 정확한 사고 경위를 알 수가 있었다. 후배는 술집에서 전화를 했다.

그날은 애인과 며칠째 틀어졌다가 화해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집에서 애인과 통화를 하고 곧바로 갈테니 조금 이따가 만나자고 하면서 술집을 튀어나갔다. 나가서 한시라도 빨리 애인을 만나보고 싶은 급한 마음에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밤중에 택시는 잘 잡히지 않았다. 할수없이 이 후배 녀석이 차도 안으로 들어갔다. 택시를 잡다가 택시가 안 잡히자 조금씩 안쪽 차선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러다가 질주하는 택시의 뒷거울에 부딪혀서 넘어지고 말았다.

찻길에 넘어져 있는데 그만 뒤에 오던 차가 사람위를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또 한 차가 밟고 가버렸다. 다므에 또 한 차가 지나갔다. 결국은 4대의 차량에 의해 후배가 그 자리에서 참변을 당한 것이다. 애인을 만나려는 급한 마음에 택시를 잡으려던 후배는 이렇게 허망하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안양에 사는 친구는 같이 술을 마시던 후배가 죽은 것도 모르고 총알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도착해서야 부인으로부터 비보를 듣고 신발도 벗지 못한채 다시 차를 돌려 병원으로 달려나왔다.

결국 이 친구는 후배의 죽음으로 더욱 회사에 남은 정마저 떨어져 버렸다며 사표를 내고 말았다. 참으로 끔찍한 사고였다. 나는 이후로 몇 달을 후배가 따라다니며 불러대는 환청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절대로 무단 횡단을 하지 않게 되었다.    

 김명수

수정일 2003년 07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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