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267) 북방의료선교사 구자현목사

김명수기자 | 입력 : 2003/06/02 [08:58]
[클릭이사람] (267) 북방의료선교사 구자현목사

북방 지역 빈민을 대상으로 의료선교활동을 하는 북방의료선교사 구자현목사(50). 그는 지금 길 없는 길을 가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쉽고 편한 길만 찾는 세태 속에서 남들이 안하는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뻥 뚫린 길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     © 피플코리아
그는 중국, 몽골, 사할린, 연해주 등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 후예들에게 의료봉사를 통한 선교활동을 줄기차게 해오고 있다. 또한 그는 올해 출범한 북방의료복지연대의 실무역할을 맡아 선교를 위한 의료사업으로 빈민구제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연변의대부속뇌과병원 척주(척추)과 과장으로 봉사해오다가 좀더 적극적으로 빈민 의료구제사업을 펼치기 위해 올가을께 중국 연변에 ‘연길성인병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장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구 목사는 왜 쉽고 편한 길 다 마다하고 하필이면 힘들고 어려운 북방의료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한국에서 목회를 하던 중 연세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94년 백두산 기도회를 한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북방선교에 대한 사명감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기차여행을 해봤자 아무리 길어도 불과 몇 시간이면 끝이 나는데 중국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국내에서 목회활동을 해온 그는 중국 여행 중 3일 동안 계속 기차를 타고 가는 과정에서 마을을 지날 때마다 교회가 있지 않을까 싶어 십자가를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지나가도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다.

열차가 출발한지 이틀 동안은 십자가가 보이지 않더니 3일째는 마음의 변화가 왔다. 교회는 한곳도 없지만 마을을 지날 때마다 마음속에 십자가가 계속 보이기 시작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북한이 바라보이는 도문 전망대에 올라섰을 때 그는 북녘을 바라보면서 30분을 펑펑 울었다. 북한에 두고 온 이산가족도 없고 아무 연고도 없는데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왜 그쪽을 바라보면서 그토록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지 그 자신도 이해를 못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던 십자가와 자신이 어떤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런 것들이 그를 중국 땅에 다시 들어오게 만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새벽기도회 준비 기도를 하기 위해 엎드리면 중국 열차 여행 때 마을에 세워졌으면 하는 교회의 십자가가 자꾸 보이는 것이었다. 일종의 신앙간증. 그러면서 마음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     © 피플코리아
중국을 다시 가기는 가야 하는데 전혀 방법을 몰랐다. 연고지도 없고 가는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3개월을 그렇게 기도만 하면 계속 십자가가 보였다. 몸은 한국에 왔어도 마음은 이미 중국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방법이 떠올랐다.

평소에 의료계통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 참에 아예 중국의 의과대학에 편입을 하자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 그래서 무작정 보따리를 싸가지고 중국에 건너가 연변의과대학 의대생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의 운명을 바꾸는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한국에서 침술 또는 카이로프락틱(교정술)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를 해온 그는 중국 연변의과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던 중 하루는 감기가 와서 가까운 병원을 찾다보니 연변의과대학 부속뇌과병원에 가게 되었다.

병원에서 조선족 의사를 찾아가 감기가 걸려 마이신 주사를 맞고 싶다고 했다. 마이신은 알지도 못하고 페니실린이 있다는 여의사의 대답에 페니실린이라도 맞게 해달라고 했다.

여의사는 페니실린 부작용 검사를 해주고 나서 ‘앉아서 기다리시라요’라고 퉁명스럽게 한마디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앉아서 기다리는 중에 다른 환자가 여의사 앞에 앉더니 그와 여의사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무슨 말을 열심히 하고 그러자 또 여의사는 그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었다. 둘이 한참 얘기하더니 그 환자는 가고 여의사가 그한테 조선족 말로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러 여기 온 사람인가?”하고 여의사가 물었다.

그래서 그가 말했다. “나는 사실 한국에서 수술하지 않고 기계로 디스크를 고치는 기술이 있는 사람인데 중국에는 이런 기술이 아직은 없는 것 같아서 내가 중국에서 공부하면서 이런 기술도 좀 알려주고 싶기도 하고 또 하나 이유는 나는 중국이 너무 너무 좋습니다.”

그러면서 그 여의사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나는 원래 한국에서 왔지만 오리지널 중국 사람입니다. 구씨가 원래는 중국의 주씨에서 나온 한족이지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 여의사가 “일단 당신을 치료한 후에 내가 맡은 환자를 데려올 테니 치료해 보겠는가?”하고 물었다. 그래서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여의사가 바로 환자를 데려와서 보니까 목 디스크 환자였다. 3개월 동안 여의사한테 침을 맞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어서 그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 앞에 데려온 것이다.

그때 마침 그가 척추 교정하는 드롭(교정기)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환자를 그 위에 올려놓고 교정을 했다. 그랬는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     © 피플코리아
환자가 치료를 받고 일어나면서 돌아가지 않던 목이 자연스럽게 양쪽으로 빙빙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선족 환자가 목을 양쪽으로 돌리면서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별났타! 별났타!”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그 여의사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또 다른 환자를 데리고 왔다. 15년 묵은 허리디스크 환자, 또는 좌골 신경통 환자를 데리고 와서 며칠동안 치료를 계속 해줬다. 그런데 또 신기하게 업혀오던 사람이 다섯 번만 치료받으면 똑바로 서서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 자신도 이렇게 빨리 치료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놀라서 하나님 앞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옆에 가끔 와서 치료 장면을 보기만 하고 가던 또 다른 여의사가 점심식사를 하는 그의 식탁으로 오더니 오늘 점심은 자기가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할 얘기가 있다고 하면서 “사실은 제가 교통사고를 세 번 당했는데 큰 병원에 가도 고칠 수가 없다고 하더라. 통증은 계속 심한데… 그러니 병을 좀 봐 달라”고 그에게 부탁을 했다. 

그래서 3일정도 치료를 해줬더니 놀라운 효과에 여의사 자신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 이후로 ‘한국에서 이상한 기계를 하나 가지고 온 학생이 별난 치료를 한다.’는 소문이 병원안에 퍼져 술렁술렁했다.

소문이 계기가 되어 결국은 연변뇌과병원 원장을 만나게 되었고, 원장이 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왔다. 그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내가 이곳에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연변뇌과병원내에 척추과를 개설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척추과 과장이 되었다.

그 후에 그를 감기 치료해 주었던 여의사가 그한테 고백할게 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 여의사에게 그를 소개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정신병 환자였다는 것이다.

알지도 못하고, 대화를 나눈 적도 전혀 없는 그 정신병 환자가 여의사를 찾아와 “저 사람은 중국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사람인데, 부처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고 그를 소개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싶었다.  

그는 정신병 환자의 영안을 열어서 여의사에게 자신을 소개한 것으로 믿는다. 그를 소개할 사람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는 그렇게 연변에서 기적처럼 의사로 봉사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학생이면서 의사로 있다가 중국 의사면허를 획득하고 연변뇌과병원에서 계속 척주과 과장으로 봉사해 오고 있다. 그동안은 중국에 주로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북방의료복지 연대를 중심으로 더 적극적으로 선교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다.

말 타는 목사님. 건강을 위한 스포츠로 그는 7년째 승마를 즐기고 있다. 그가 승마를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다른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만나고 약속을 해야 되지만 승마는 자신이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도록 말이 기다려주고 있기 때문이란다.

말을 타게 된 동기는 첫째는 말을 좋아하고 두 번째는 앞으로 북방선교에 말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것 같아서 승마를 하고 있다.

그가 즐기는 승마는 단순한 취미 차원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북방 선교활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앞으로 선교활동을 해나갈 몽골 및 그 외의 많은 지역들에서는 교통수단으로 말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그는 본다.

역곡의 아름다운 교회 협동목사이기도 한 그는 목사이기 이전에 선교사이다보니 목회에 전념을 할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경기도 양평이 고향으로 중고등학교때는 복싱선수생활을 했다. 한때 주먹으로 놀았던 사람이 목사가 되었으니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바뀐 다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어디 그 뿐인가. 단순한 목사가 아니라 말을 타고 달리며 의료선교활동을 하는 북방의료선교사가 아닌가.

복싱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던 고3때 기도원 집회에 참석했다가 거기서 복음을 위해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 목사가 되고 나서 위에서 말한 그런 이유로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중국에서 10년째 북방의료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아내와 가족은 한국에 살고 있다. 아들만 셋. 막내는 음대 성악과에 다니고 둘째는 인간재활학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큰아들은 대학에 다니다가 다시 한의대를 들어가려고 공부를 하고 있다. 

연변의대부속 뇌과병원 척주과 과장으로 있으면서 음성적으로는 주일이나 또는 예배시간에 농촌 지하교회에 찾아가 의료봉사를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선교사의 길로 이어진 그는 이제 연변의료복지연대라는 조직을 통해서 그가 꿈꾸는 북방선교활동을 구체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신앙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는 사각의 링에서 주먹으로 세계를 제패하는 사각의 왕자를 꿈꿨다는 별난 목사님. 그런데 운명이 바뀌어 목회자가 되었고 선교사가 되었다.

단순한 성격으로 뭐든지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생각안하고 그 길만 간다고 자신을 분석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선교가 동기가 되어 말을 타게 되었다는 그의 말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어려서부터 말을 좋아했지만 감히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선교를 해보니까 앞으로 말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말을 가까이 대해 보니까 말은 복종하는 동물이고 정말 순한 동물이고 손으로 만져 보아도 피부적으로도 아주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느끼는 청명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말만 바라보고 있어도 말을 통해서 가슴속에 평화를 느낀다고 한다. 말이 있으면 그래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제는 외국에 가더라도 말은 항상 그의 곁에 있을 것이다.

그는 외국의 영화에서 전도자들이 말을 타고 성경을 들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그런 전도자가 되고 싶다는 상상을 많이 한다. 그러면서 말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그는 항상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북방선교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말을 타고 한손엔 성경을 들고 한손엔 고삐를 들고 북방을 질주하면서 의료선교활동을 하는 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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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6월02일 오전 8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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